원굉도의 독서법…“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서 지극한 경지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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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굉도의 독서법…“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서 지극한 경지 찾아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2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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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96)
 

[한정주=역사평론가] 원석공(袁石公)은 어찌 기이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가 지은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다.

“서늘한데 좋은 꿈이었고 / 물가에 와 한가로이 시름 잊네.”

마음이 없어도 꿈을 꾸게 되고 마음이 있어도 잊게 되는가.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논할 것도 없다. 단지 자연스럽게 이루었을 따름이다.

그가 지은 ‘독서(讀書)’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책 위에 쌓인 먼지 털어내고 / 의관(衣冠)을 바로하고 옛 사람과 마주하네. / 저서로 전해온 것 모두 마음과 기운이고 / 이치를 깨우쳐 정신을 더욱 기르네. / 도끼를 잡고 주옥(珠玉)을 캐고 / 그물을 넓게 펼쳐 봉황과 기린을 잡네. / 장차 반 척(尺)의 빗자루를 들고 / 온 땅의 가시덤불을 쓸어버리리라.”

이것이야말로 독서법(讀書法)의 참된 이치를 얻었다고 할 만하다.(재번역)

袁石公豈非異人乎 其詩曰 好夢因凉得 閑愁到水忘 無心而得耶 有心而忘耶 無論其有無 只自然耳 讀書詩曰 拭却韋編塵 衣冠對古人 著來皆肺腑 道破益精神 把斧樵珠玉 恢綱網鳳獜 擬將半尺帚 匝地掃荊榛 眞道得讀書法. 『이목구심서 2』

원굉도는 이탁오의 철학에서 양향을 받아 명나라 말기 문장 혁신을 주도한 이른바 삼원(三袁) 혹은 공안파(公安派)의 리더였다.

‘삼원’은 원굉도와 그의 형인 원종도(袁宗道), 동생인 원중도(袁中道)를 함께 일컫는 말이고, ‘공안파’는 이들의 고향이 형주부(荊州府) 공안(公安)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비록 원씨 삼형제를 통칭해 ‘공안파’라고 했지만 실제 공안파는 곧 원굉도를 지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굉도의 사상적·문학적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원굉도는 원석공(元石公) 또는 원중랑(元中郞)이라고도 불렸는데, 석공은 그의 호(號)이고 중랑은 그의 자(字)이다.

원굉도의 문집인 『원중랑집(元中郞集)』은 이덕무를 비롯한 18세기 조선의 문인과 지식인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덕무는 원굉도를 주변 사람들에게 확산시켜 중랑서원(中郞書院)을 세우려고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을 정도로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원굉도는 고문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문장을 지향했다. 그러나 그 혁신은 고문과 고전에 대한 독서에 바탕하고 있으면서, 다시 그 고문과 고전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문장을 개척해 얻은 것이다.

독서의 참된 방법이란 책 속에서 옛 사람을 만나되 도끼 들고 보물인 진주와 옥을 캔 듯 그물을 쳐서 영물인 봉황과 기린을 잡 듯 했던 뜻을 배워 나의 정신과 기운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한 자루의 비를 들고 온 세상의 가시와 수풀을 쓸어버리고 자신만의 영토를 개척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 터득해 얻는 것이 없다면 독서는 단지 옛 사람의 말과 글을 되풀이하는데 불과할 뿐이다.

독서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데서 지극한 경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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