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유자…다른 색깔·향기에 내가 묻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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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와 유자…다른 색깔·향기에 내가 묻히는 곳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29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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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00)
 

[한정주=역사평론가] 매화가 있는 감실(龕室) 가운데 유자를 놓아둔다면 그것은 곧 매화를 모욕하는 짓이다.

예전부터 매화는 맑은 덕과 깨끗한 지조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차마 다른 물건의 향기를 빌어 매화를 돕는단 말인가.(재번역)

梅花龕中置柚子 是辱梅花也 曾謂梅花之淸德潔操 忍能假借它家香以助己也. 『이목구심서 2』

매화와 유자만 그렇겠는가? 사람 역시 모두 자기 나름의 향기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다른 향기에 나의 향기가 덮이고, 다른 색깔에 나의 색깔이 묻히는 곳에는 애초부터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퍼져 나가는 곳, 자신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곳에 마땅히 자리해야 한다.

다른 향기가 더 좋다고 해서 나의 향기를 지우고, 다른 색깔이 더 빛난다고 해서 나의 색깔을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다른 사람의 향기가 아무리 좋고 다른 사람의 색깔이 아무리 빛난다고 해도, 그것은 나만의 향기와 색깔을 지니는 것만 못하다.

매화의 향기와 색깔을 지녔다면 매화답게 살면 되고, 유자의 향기와 색깔을 지녔다면 유자답게 살면 된다.

더욱이 향기가 진한 장미도 아름다운 꽃이고, 향기가 없는 모란도 아름다운 꽃이다. 향기가 진하다고 해서 취하고 향기가 없다고 해서 버리지 않는다.

진한 색깔을 뽐내는 노란 국화도 국화고, 순백의 색깔을 지닌 하얀 국화도 국화다. 색깔이 노랗다고 해서 취하고 하얗다고 버리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란 이와 같다.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사람 역시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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