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상인 집안 출신의 문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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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상인 집안 출신의 문장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03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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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04)
 

[한정주=역사평론가] 농부와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사방을 돌아봐도 사우(師友) 한 사람 없지만 묘하게 문장을 깨우쳐 시원스럽게 세속의 더러움을 벗은 이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성불(成佛)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수많은 문헌(文獻)과 사우(師友)에 둘러싸여 있지만 평생토록 어리석고 거칠기만 한 사람은 장차 어찌할 것인가. 아아! 슬프다.(재번역)

生長農商家 四顧無師友 能竗悟文章 快脫塵染 是成佛之資 地則文獻 多師友 又多書籍 終年鹵莾者 將若之何 嗚呼悲哉. 『이목구심서 2』

이덕무는 18세기 일본에 관한 최신 종합 연구서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책을 저술했다. 『청령국지(蜻蛉國志)』가 바로 그 책이다.

그 지형이 마치 ‘청령(蜻蛉)’, 즉 잠자리와 닮았다고 해서 예전에는 일본을 ‘청령국(蜻蛉國)’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사민(四民), 즉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차이다.

이덕무는 조선과 일본의 사민(四民)은 신분질서 상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기록했다. 즉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속에서 공인과 상인이 농민보다 더 미천했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의 풍속은 “직위를 가진 자가 높고, 그 다음이 상인이고, 그 다음이 공장(工匠)이고, 가장 낮은 것이 농민이다”고 증언하고 있다.

조선이 농본주의(農本主義)의 나라였다면 일본은 중상주의(重商主義)의 나라였다고나 할까! 백성 중 조선은 농민을 중시한 반면 일본은 상인과 공장을 중시한다.

더욱이 이덕무는 일본에서는 “문사(文士)라 일컫는 자는 공업이나 상업을 겸해 살아간다. 그러므로 하류에 있는 자 중에 실로 문인과 시인이 많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도시 상공업 계층이 곧 지식인 세력을 형성해 성장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식인이 공업과 상업을 겸한다는 것은 당시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일본의 경제 체제와 사회 구조는 조선보다 훨씬 상공인 계층이 강력한 사회경제 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상공인 계층과 그곳 출신의 지식인들이 주도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문화예술의 신사조는 19세기 중반 일본의 근대화, 즉 ‘메이지유신’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만약 조선의 지식인 즉 사대부가 상인과 공장(工匠)을 겸해 문화예술과 더불어 사회경제 활동에 힘썼다면 어땠을까? 이덕무의 절친한 사우였던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주장한 ‘양반상인론(兩班商人論)’과 『청령국지』의 ‘사민(四民)’은 흥미롭게도 글의 행간에 숨긴 의도가 매우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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