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한 유학생’에서 엘리트 권력이 된 미국 유학파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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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한 유학생’에서 엘리트 권력이 된 미국 유학파의 명과 암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6.0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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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드디외는 교육과 학력의 재생산이 계급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학력 등의 문화자본이 사회자본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포착했는데 그의 연구는 동질적인 사회 또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부드디외의 계층이론에 따르면 자본가와 지식인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한다. 여기서 지식인은 자본가 계층에 종속되고 지식인 계층은 ‘지배받는 지배자’다.

신간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의 저자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르디외의 계층 이론의 개념을 빌려와 한국과 미국 대학 간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 유학파 엘리트 지식인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다시 명명한다.

미국 유학파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그들의 문화자본은 자생적이고 주체적이기보다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체현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미국 학계에 종속돼 있는 미국 유학파의 식민성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일갈한 것이다.

2012~2013년 기준 미국에 유학중인 한국 유학생 수는 7만627명이다. 중국인 23만5597명, 인도인 9만6754명에 이어 3위다. 그러나 인구 비율로 환산하면 한국(5000만명)은 중국(13억명)보다 7.8배, 인도(12억명)보다는 17.5배가 많은 수치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다.

이들 미국 유학파는 학위라는 문화자본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글로벌 헤게모니를 담지하면서 한국의 학계와 기업체에서 지식인 엘리트로 군림한다. 지식인으로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대학이라는 주체가 부여한 문화자본과 언어자본을 가지고 있어 미국 대학의 학문 체계와 헤게모니에 의해 지배되는 이중적인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즉 그들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라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열등한 유학생’이었고 학문적으로도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미국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까? 먼저 미국과 한국 대학 간에는 글로벌 위계가 존재한다.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이 지니는 글로벌 명성으로 인해 미국 학위는 한국에서 가치가 높은 문화 자본으로 통용된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적 특수주의라고 할 만한 학벌체제가 결합한다.

한국의 교수 시장에서 어느 학부를 나왔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반면 미국에서는 학부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즉 한국 학부 학위와 미국 박사 학위의 조합이 최종적으로 가지는 문화자본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학벌체제는 자연스럽게 파벌을 형성하게 하고 이는 학계나 직장에서 ‘끼리끼리’ 문화가 만들어지는 원인이 된다.

 

김종영 교수는 미국 유학파가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디는 근본적인 원인을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 사회의 학벌 체제가 결합하는 데서 찾는다. 그리고 이를 ‘글로컬 학벌 체제’라고 요약한다.

즉 글로벌한 차원에서 작동하는 대학의 위계 관계와 로컬 차원에서 작동하는 학벌 체제가 공히 미국 유학파가 한국에서 우월한 지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도 않고 기득권을 내려놓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지배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대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렵 대학으로부터 헤게모니를 빼앗아왔듯이 지식생산의 권력관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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