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함과 아첨에도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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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함과 아첨에도 등급이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0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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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06)
 

[한정주=역사평론가] 가령 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고 아양 떨며 일생 동안 남을 기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비록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꾸미는데 익숙해져 스스로 편하거나 이롭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막고 가린 것이 아주 얇고 좁아 감추려고 할수록 더욱 드러날 뿐이다.

제아무리 애써 봤자 고생스럽기만 할 것이다.(재번역)

假有巧詐諂媚 一生騙人 雖慣於粉餙 自謂便利 然其障蔽於人者甚薄狹 隨遮隨現 極勞苦哉. 『이목구심서 3』

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는 짓에도 최상과 중간과 최하의 등급이 있다.

몸을 가지런히 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하게 하고, 명예나 이익에 초연하고, 상대방과 사귀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척하는 인간 부류는 최상 등급이다.

간곡하게 바른 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활용해 뜻이 통하도록 하는 인간 따위는 중간 등급이다.

발바닥이 다 닿도록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고 돗자리가 다 떨어지도록 뭉개고 앉아 상대방의 입술과 안색을 살피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좋다고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이런 아첨은 처음 들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자꾸 듣다 보며 도리어 싫증이 나는 법이다.

그러면 아첨하는 사람을 비천하고 누추하다고 여기고 끝내는 자신을 갖고 노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된다. 이러한 인간들은 최하 등급이다.

박지원이 스무 살 무렵 지은 세태 풍자 전기인 ‘마장전(馬駔傳傳)’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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