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장승과 진흙 소상과 두꺼비 가죽…“궁핍할 때에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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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장승과 진흙 소상과 두꺼비 가죽…“궁핍할 때에야 보인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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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11)
 

[한정주=역사평론가] 쥐구멍으로 새는 연기가 저녁이면 방안에 가득하여 나무로 만든 장승이라도 눈물이 흐를 지경이고 진흙으로 만든 소상(塑像)이라도 기침을 할 만한데 하물며 혈기가 있는 자이겠는가.

내가 작은 창을 열어 놓고 서쪽으로 앉아서 연기를 피하면 눈도 깜박일 수 있고 숨도 쉴 수 있으며 눈물도 나지 않고 목구멍에 기침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열 손가락은 모두 얼어 터져 억세기가 오래된 두꺼비 가죽 같다.

낮에는 소매 속에 넣고 밤에는 이불에 감추어 부딪지 않게 하고 긁지도 않으면서 때로 구부리고 펴서 무사하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 곳에 두어 다만 해마(害馬)를 제거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곱고 부드럽게 새 살이 났다.

두 눈에 풍열(風熱)이 있어 붓과 벼루를 닫아두고 서책도 넣어놓고 맹세코 밝은 창문은 보지 않고, 깊이 눈을 감고서 안정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니 조금 지나자 눈동자가 시었다.

눈을 반쯤 떠서 새까만 물건을 오래 응시하니 밝은 것이 점점 커지고 풍열이 물러갔다.(재번역)

鼠竅之烟 夕則蓊鬱室中 木偶可目爛 泥塑可喉嗽 况有血氣者乎 余其闢小牖 西向坐順烟勢 而瞬有理息有機 目不爛喉不嗽矣 十指皆凍皴 屭贔如古蟾革 画 納袖夜藏衾 不觸不爬 時其屈伸 而斡旋於無事之地想忘之域 但除害馬者而已 今鮮軟生新耳 雙眼有風熱 鎖筆硯囚書帙 誓不見潑明之窻 闔眼深深安靜扶心 久而眸酸 半開眼凝見純黑之物 久則明漸養 而風熱退也 肝屬木陽也 眼屬肝而善回轉流注 則動物也 况邪風捶木 客熱熏肝 眼安得不病 闔者至靜 可以鎭動 黑者水屬 而亦靜象也 老子曰 五色令人目盲 余改之曰 四色令人目盲 黑色令人目明也 夫赤目賊也. 『이목구심서 1』

궁핍하고 옹색하고 가난했던 선비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추운 겨울날 작고 초라한 집의 좁은 방안에 고요히 앉아 있다. 그러나 쥐구멍 같이 갈라지고 뚫린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연기 때문에 아무 고통과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나무 장승과 진흙 소상이라고 해도 배겨낼 재간이 없을 지경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연기를 피하기 위해 작은 창문을 열고 서쪽을 향해 앉아본다. 연기 때문에 흐르던 눈물과 목구멍의 기침은 멈췄지만 이제 추위 때문에 열 손가락을 얼어 터져 두꺼비 가죽처럼 억세고 거칠어진다.

소매에 넣고 이불로 감싸 간신히 새 살이 돋아났다. 그런데 이제 눈의 풍열(風熱)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새까만 물체를 오래 응시하니 눈은 점차 밝아지고 풍열은 물러갔다. 궁핍하고 옹색하고 가난해 겪게 되는 온갖 고통과 설움이 눈앞에서 본 듯 그려진다.

그런데 이덕무는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삶의 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죽겠다거나 괴롭다거나 힘들다는 뜻의 글자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궁핍할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참됨과 거짓됨을 알 수 있다. 가난할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뜻과 기운을 알 수 있다.

궁핍한 생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난한 삶을 편안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일을 맡겨도 문제될 게 없다. 궁핍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고 가난한 삶을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에게서 세상 모든 부정과 비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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