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큰 병통…“사람들 속에 섞이려 애쓰지만”
상태바
평생의 큰 병통…“사람들 속에 섞이려 애쓰지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21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19)
 

[한정주=역사평론가] 내 평생에 큰 병통의 뿌리가 있다. 나처럼 세상 물정에 어둡고 거친 자를 용납해 주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곧 산수(山水)를 비평하고 문장을 담론하며 민요와 풍속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이야기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해학과 웃음을 뒤섞어 가면서 대화하다가 낮이 가고 밤이 새니 사람들은 내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만약 나와 마주한 상대방이 서로 취미가 맞지 않아서 그 사람의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내 말을 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비록 억지로 웃거나 말하려고 해도 끝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마음 속 말까지 할 수 있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이치에 맞는 표현이다.

매번 억지로 다른 사람들 속에 어울리며 스며들려고 애를 쓰지만 나이 30이 가까워도 끝내 제대로 하지 못하니 한스럽고 한스러울 뿐이다. (재번역)

余平生有大病根 對能容受吾迂踈底人 則評山水 譚文章 以至民風謠俗 娓娓不厭 雜以諧笑 窮晝竟夜 人不知吾爲不能言人也 若吾與人趣味不入 人言而吾不知 吾言而人不知 雖欲強爲笑語 沒沒不可爲也 於是受無情之譏 伸於知己 屈於不知己者 宲際語也 然每欲強務淋漓爛熳意態 而年近三十 卒不能辦 可恨可恨. 『이목구심서 6』

나와 뜻이 맞고, 나와 취향이 맞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말을 잘 한다.

그러나 나와 뜻이 맞지 않고, 나와 취향이 다르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말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인가 아니면 말이 적은 사람인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구태여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자칫 나를 알아달라고 구걸하는 추태(醜態)로 보이지 않겠는가? 조용히 앉아 있다가 다시 만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