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독서할 마음이 생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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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독서할 마음이 생길 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2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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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21)
 

[한정주=역사평론가] 만약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굶주리지도 않고 배부르지도 않고, 마음은 화평하고 기쁘며,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고, 게다가 등불은 밝아 창(窓)이 환하고 서질(書帙)이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고, 책상과 자리가 정결하면 독서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하물며 뜻이 높으며 재주가 막힘없이 환히 통하고 젊은 나이에 건장한 기운까지 겸비한 사람이 독서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무릇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은 힘쓰고 또 힘써야 할 것이다. (재번역)

如其不暖不寒不飢不飽 心地和悅 軆幹康安 加之以燈紅窓白 書帙精覈 几席明潔 則可不勝其讀矣 况兼之以志高才達 年少氣健之子 不讀復何爲哉 凡吾同志 勉之勉之. 『이목구심서 3』

중국 위(魏)나라 사람인 동우(董遇)는 ‘삼여지설(三餘之說)’에서 ‘밤’과 ‘비오는 날’과 ‘겨울철’의 세 가지 여분의 시간이야말로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독서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 말했다. 그럼 그때 어떻게 독서해야 할까?

맑은 날 밤 고요하게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 온 세상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간혹 종소리만 들려온다. 이때 이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에 빠져 책을 읽으며 피로를 잊는다.

또한 이부자리를 걷고 여자를 멀리한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몰아쳐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사람의 들고남이 끊어지고 책만 앞에 가득히 쌓여 있다. 이처럼 그윽한 고요함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숲에 한 해가 저물고 싸락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깊게 눈이 쌓여 있다. 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고, 겨울새가 들녘에서 울음 운다. 방 안에 난로를 끼고 앉아 있노라면 차 향기에 달콤한 술이 익어간다.

이러한 때 시와 글을 모아서 엮고 있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허균이 옛 사람들의 글을 모아 엮은 『한정록(閑情錄)』의 ‘정업(靜業)’편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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