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인…진실로 어둡고 한심하고 어리석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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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원인…진실로 어둡고 한심하고 어리석은 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24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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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22)

[한정주=역사평론가] 내가 밤에 수천 군사가 북을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고, 대포 소리가 요란하고, 횃불이 환히 밝혀져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홀연히 기지개를 켜고 잠에서 깨어보니 베개 옆 등잔에 기름이 다 말라 불꽃이 가물 가물거리며 등불이 켜졌다 다시 꺼졌다 하고 있었다. 또한 불이 터질 때처럼 폭폭(爆爆)하는 소리가 났다.

슬프다! 이러한 작은 광경(光景)이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거대한 진(陣)을 펼치고 격렬하게 어우러진 싸움을 그치지 않았으니 조화의 권능이 참으로 교묘하기 그지없다.

대저 꿈이란 생각이 원인이 되어 생겨난다. 이 꿈은 생각이 원인이 되어 생겼지만 올바른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등불을 혹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두었다면 이와 같은 꿈은 꾸지 않았을 것이다. 등불을 너무 머리맡에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귀신과 더불어 노닐게 된 것이다. (재번역)

余夜夢千軍鼓噪 炮聲撩亂 炬火赫赫而四匝 忽欠伸而覺 則枕邊燈膏枯盡 火焰兀兀 明且暗 又爆爆有聲 噫 此一小光景 入我夢中 鋪張大陣 酣戰不已 造化之權極幻弄也 夫夢 想也因也 此夢類因而非正因也 然燈或置數步地 則無此矣 以其直近頭邊 故神與遊之也.

사람의 평소 생각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조차 그 원인과 까닭을 알 수 없는 꿈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다. 낮잠만 자도 꿈을 꾼다. 내 생각과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꿈도 많지만 밑도 끝도 헤아릴 수 없는 아리송한 꿈도 있다. 심지어 내게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일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비록 나는 전생(前生)을 믿지 않지만 그렇듯 내 생각과 마음 혹은 나의 삶에 없었던 것이 꿈에 나타나면 혹시 뇌 속에 전생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꿈에 지나치게 집착해 미혹(迷惑)되는 사람은 진실로 어둡고 한심하고 어리석은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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