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비방에 타협·굴복하지 않았던 이용휴의 강철 같은 작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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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비방에 타협·굴복하지 않았던 이용휴의 강철 같은 작가 정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30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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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② 기묘(奇妙)와 기궤(奇詭)의 미학⑤
▲ 이용휴의 시고 ‘송사계경협귀은섬곡’(왼쪽)과 문집 『혜환시초』.

[한정주=역사평론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용휴의 글을 살펴보면서 그 기이하고 괴상한 문장의 기운과 날카롭고 새로운 문장의 풍격(風格)을 감상해보자.

먼저 인간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장쾌(壯快)한 기상과 절묘한 표현으로 거침없이 써 내려간 ‘조운거 군에게 주다(贈趙君雲擧)’라는 글을 읽어보자.

“부채를 부쳐 바람을 일으키고, 물을 뿜어 무지개를 만든다. 갈대의 재로 달무리를 이지러뜨리고, 펄펄 끓는 국으로는 여름날 얼음을 만든다. 나무소를 걸어가게 하고, 구리종이 저절로 울리게 한다. 목소리로는 귀신을 불러오고, 기운으로는 뱀과 범을 꼼짝 못하게 한다.

서방세계 끝과 동해바다 끝을 상상을 통하여 경각의 시간에 일주하고, 하늘 꼭대기와 지하세계를 한번 생각으로 순식간에 도달한다. 일백 세대 이전의 일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하고, 천 년 이후의 일을 미루어 추측한다.

먼 옛날의 뭇 철인(哲人)조차도 제게 주어진 능력을 오히려 다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큰 지혜와 큰 재능을 가지고 있건마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일곱 자 크기의 몸뚱어리에 부림을 받아 술과 여색, 재물과 기분에 파묻혀 세월을 보낸다면 너무도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용휴, ‘조운거 군에게 주다(贈趙君雲擧)’ (이용휴 지음, 조남권‧박동욱 옮김,『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상)』‘혜환잡저 6’, 소명출판, 2007. 인용)

마치 상상 속 동물인 곤어(鯤魚)와 대붕(大鵬)의 변신과 비상을 담은 우화(寓話)를 통해 끝을 할 수 없는 세계와 막힘이 없는 자유정신을 묘사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의 첫 장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멋진 글이다.

특히 상상을 통해 서방세계와 동해바다 그리고 하늘 꼭대기와 지하세계를 경각의 시간에 일주한다는 발상과 묘사는 이용휴가 자신의 문장 속에 담은 기상과 기백이 얼마나 거대하고 담대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외손자에게 삶의 경계로 삼으라고 잠언을 써 주면서 세상 모든 일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밝힌 다음 “천 명의 사람이 나를 알게 하기보다는 어떤 한 사람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낫고, 한 세상이 나를 알게 하기보다는 천 년의 세상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피력한 글을 읽다보면 만년(晩年)에 이르러서도 ‘기이하고 괴상한 문장을 일삼는다’는 세상의 비난과 비방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던 이용휴의 강철 같은 작가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내 아들, 내 손자는 본래부터 사랑하지만 타인은 내게 이익을 주어야 비로소 사랑하는 법이다. 너는 나의 외손이다. 게다가 내가 늙고 병들어서 귀와 눈을 네게 의지하고, 눕고 일어설 때 네가 필요하고, 서책과 안석, 지팡이의 일까지 네가 도맡아 하니 나한테 베푸는 이익이 몹시 크다. 본래 너를 사랑하는 데다 내게 이익을 주는 자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겸하였구나. 다만 내가 네게 베풀 덕이 없으므로 옛사람의 격언을 써서 주리라. 너는 바탕과 성품이 훌륭하고, 또 학문에 종사하니 장래에 거둘 성취가 어찌 우리나라 근래의 인물 정도에 머물고 말겠느냐?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만들지 못하고, 부귀를 추구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근심과 고생을 참는 일은 쉬우나 환락과 즐거움을 참는 일은 어려우며, 성냄과 욕지거리를 참는 일은 쉬우나 기쁨과 웃음을 참는 것은 어렵다.

남을 헐뜯는 자는 스스로를 헐뜯는 것이고, 남을 성공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성공한다. 천하에는 선을 행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없고, 악을 행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 한 생각도 남에게 미치지 않는 자는 썩은 창자를 가진 자요, 하루도 일하지 않는 자는 완악한 사내다.

옛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은 굳센 의지가 없는 것이요, 지금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은 도량이 없는 것이다. 군자는 벗을 떳떳하게 사귀어 의(義)를 지키고, 떳떳하게 맹세하여 신의를 지킨다. 가마솥에 쌀이 넘치면 사람이 쳐내고, 사람에게 벼슬이 넘치면 하늘이 쳐낸다. 득의한 시기는 사람의 의지와 기상을 키우기도 하지만, 사람의 좋은 바탕을 소멸시킬 수도 있다.

자아 반성, 자기 질책, 자기 강화, 자기 칭찬, 자기 선택, 자기 만듦, 자포자기라는 말이 있거니와 이는 만사가 자기로부터 나오며 남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을 밝힌 말이다. 천 명의 사람이 나를 알게 하기보다는 어떤 한 사람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낫고, 한 세상이 나를 알게 하기보다는 천 년의 세상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낫다.” 이용휴, ‘외손 허질에게 주는 글(書贈外孫許瓆)’ (이용휴 지음, 조남권‧박동욱 옮김,『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하)』‘혜환잡저 9’, 소명출판, 2007. 인용)

더욱이 ‘아암기(我菴記)’라는 글에서 이용휴는 다른 사람과 외물(外物)이 아닌 ‘나 자신’을 삶과 가치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부귀영화와 명예 및 출세를 지향하는 삶은 스스로 일하며 즐거워하는 삶과 비교하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 자신을 삶과 가치의 중심에 놓는다는 생각은 자칫 편협한 ‘에고이즘’에 갇히기 쉽다. 그런데 이용휴는 ‘나 자신’이 가치가 있는 만큼 ‘세상 모든 사람’ 역시 가치가 있다는 ‘인아평등(人我平等: 다른 사람과 나는 평등하다)’으로 인식을 확장시키고 다시 ‘나 자신’과 ‘세상 만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사상으로 발전시킨다.

따라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 만물’은 평등하다. 또한 세상 모든 생명은 하나의 운명체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과 만물은 나 자신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철학이다.

나 자신이 아닌 성인(聖人: 공자·맹자·주자 등)의 삶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또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차별과 계급 불평등을 당연시한 성리학적 관념과 질서 속에 갇혀 산 그 시대 사람들의 상식과 관습적 사고를 여지없이 부숴버리는 기이한 사고와 절묘한 발상이 돋보이는 글이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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