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제야(除夜)의 풍경…새해 맞이하는 조선 백성의 삶과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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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제야(除夜)의 풍경…새해 맞이하는 조선 백성의 삶과 정서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7.17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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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33)

[한정주 역사평론가] 1년의 일을 자세히 헤아려 보면 큰 파초와 살찐 사슴이 여름 구름보다 기변(奇變)이 심하고, 한 사람의 일을 가만히 기억하면 느티나무와 작은 개미가 가을 물결보다 환롱(幻弄)이 심하다.

하물며 백년의 일이 원만하여 이지러짐이 없고, 만인의 일이 가지런하여 어그러짐이 없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내가 갑신년 섣달 그믐날 밤에 시(詩) 짓기를 “신년 인사를 시속에 따라하고 吉語任俗爲 /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만나면 축하하네 笑顔逢人祝 / 소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小子何所願 / 어머님의 폐병이 낫는 것이라네 慈母肺病釋” 하였으니 폐병이란 것은 기침병이다.

지금은 슬픈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은은하게 아직도 귀에 있는 듯하다.

황홀하게 사방을 돌아보아도 기침하시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다. 이에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등잔에게 물으나 등잔이 말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

또 짓기를 “큰누이는 흰 떡을 찌고 大妹炊白餠 / 작은누이는 붉은 치마를 다린다 小妹熨茜裳 / 어린 아우는 형에게 절을 하고 稚弟拜阿兄 / 형은 어머니에게 절을 한다 阿兄拜阿孃” 하였는데 지금 큰누이는 시집가서 집 생각에 눈물을 떨굴 것이요, 작은누이는 치마저고리에 눈물이 젖어서 얼룩졌을 것이다.

내가 어린 아우를 대리고 사당(祠堂)에 곡배(哭拜)하면서 소리 질러 어머니를 부르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또 짓기를 “약한 아내는 친정에 가서 弱妻親庭去 / 새해에 가만히 눈물을 흘릴 것이다 逢年暗垂淚 / 슬픈 것은 죽은 딸이 所嗟地中女 / 살았다면 곧 네 살일 것이네 生存卽四歲” 하였다.

금년에 아들 중구(重駒)가 태어났는데 구(駒)의 어미가 구를 안고 있으므로 죽은 딸 생각은 조금 덜하였지만 시어머니께 손자를 안아보게 해 드리지 못한 데 대해 한을 품었기 때문에 구의 이마에 눈물을 떨군다.

또 짓기를 “여범은 부인을 장사지내고 汝範孺人瘞 / 제석에 졸곡제를 지냈다 除夕卒哭祭 / 옛사람 생각을 견딜 수 없는데 叵耐憶舊人 / 경황없이 새해를 만났다 無聊値新歲” 하였는데, 지금 여범이 이미 아내의 복을 벗고 또 임씨(任氏)에게 장가들었다.

또 짓기를 “명오는 시로 책력을 만들었는데 明五詩作曆 / 삼백육십 편이다 三百六十篇 / 애닯도다 너 읊조리는 것이 너무 괴로워 憐汝吟太苦 / 양 눈썹을 일년 동안 찡그렸다 雙眉皺一年” 하였는데 금년에는 명오의 시가 한 해의 수에 차지 못하고 겨울에 나의 손을 잡고 두어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표연히 금수(錦水)를 향하여 가버렸다.

또 짓기를 “사람이 오십이 되면 人或滿五十 / 말마다 반백의 탄식인데 言言半百歎 / 나는 이십오세가 되었으니 儂當二十五 / 오십의 절반이구나 恰是五十半” 하였는데 지금 어느 사이 또 반 60의 길을 밟게 되었다.

또 짓기를 “일생에 마음이 여물지 못하고 게을러서 一生心疏懶 / 제석이면 슬퍼한다 每於除夕悲 / 길이 제석의 이 마음을 품으면 長懷除夕心 / 새해에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新年好人爲” 하였다.

다만 여전히 옛날의 자취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새해에도 과연 좋은 사람이 될는지. 나는 항심(恒心)은 없다 해도 잘 처리하면 될 것이다.

저 조물(造物)이 어찌 내게만 이런 점을 주었는가. 대저 을유년은 윤달이 있으니 모두 3백 80일 동안의 일이다. 이것은 다만 내 시 가운데의 말이고 그 나머지 인정(人情)·세태(世態)의 크고 작은 사변(事變)과 살고 죽고 떠나고 합하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람의 지혜는 장양(張良)·진평(陳平) 같고 부(富)는 진(晉) 나라·초(楚) 나라 같아서 늙고 죽지 않고자 한들 되지 않을 것이다. 을유년 제야(除夜)에 쓴다.

一年之事細筭 則大蕉肥鹿 劇奇變於夏雲 一人之事暗記 則荒槐纖螘 太幻弄於秋濤 而况百年之事 圓而無缺 萬人之事 齊而無差 其可得乎 余甲申除日 有詩曰 吉語任俗爲 笑顔逢人祝 小子何所願 慈母肺病釋 肺病者 咳喘也 于今悲思而靜聽 則吾母之咳喘 隱隱尙在于耳也 怳惚而四瞻 則咳喘之吾母 影亦不可覿矣 於是 淚湧而面可浴也 問諸燈 奈燈不語何 又曰 大妹炊白餠 小妹熨茜裳 稚弟拜阿兄 阿兄拜阿孃 今也 大妹歸于夫家 正應思家而彈淚暗啼矣 小妹衣裙淚漬而斑斑 余携稚弟 再拜哭于祠 雖欲疾聲而喚阿孃 阿孃其漠然而無應矣 又曰 弱妻親庭去 逢年暗垂淚 所嗟地中女 生存卽四歲 今年子重駒生 爲駒也母者 以抱駒也 故於地中女 思少减焉 只齎恨于不使阿姑抱男孫也 故淚墜于駒也額髮也 又曰 汝範孺人瘞 除夕卒哭祭 叵耐憶舊人 無聊値新歲 今汝範已除婦服 又醮於任氏矣 又曰 明五詩作曆 三百六十篇 憐汝吟太苦 雙眉皺一年 明五今年詩 亦不圓一朞數 而冬執余手 零數行淚 飄然向錦水去耳 又曰 人或滿五十 言言半百歎 儂當二十五 恰是五十半 今居然之間 又得半六十之蹊逕也 又曰 一生心踈懶 每於除夕悲 長懷除夕心 新年好人爲 只獨依舊磨驢跡 新年果爲好人耶 此則雖無恒而善變焉 可也 彼造物小兒 何獨以此享我耶 夫乙酉有閏凡三百八十餘日事也 此只余詩中語 其餘人情世態 大小事變 存沒離合 不可勝言矣 人雖智如良平 富如晉楚 縱欲不老且死 不可得也 乙酉除夜書. 『이목구심서 1』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문(詩文)을 두고 중국의 시문을 본받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꾸짖었다.

이덕무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다. 조선은 그 산천과 풍속과 기후와 언어가 중국과 같지 않다. 그대 사대부들이 숭상하는 시의 경전인 『시경』에 실린 300편의 시는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민간의 남녀노소가 나눈 말들을 시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나라와 나라는 물론 시골과 시골 사이에도 제각각 풍속이 다르다. 그래서 『시경』을 편찬한 이는 여러 나라의 시를 채록해 국풍(國風)을 만들었다. 제각각 다른 나라와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고찰하고 그 민요와 풍속을 징험했다.

만약 다시 중국에 성인(聖人)이 나와 여러 나라의 풍속을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덕무의 시문을 깊이 헤아려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이덕무의 시문은 우리 조선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표현했고, 조선 사람의 성정을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덕무의 시문은 마땅히 ‘조선의 국풍(國風)’이라고 해야 한다. 중국 시문을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조선의 산천과 풍속은 물론 조선 사람의 정서와 취향을 진실하게 드러낸 이덕무의 글이야말로 참된 ‘조선의 시문’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다.

‘을유년 제야(除夜)의 풍경’을 묘사한 이 시문에서 우리는 250여년 전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조선 백성의 삶의 모습과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글이란 마땅히 그 시대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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