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집에도 가격(家格)이 있다”…전통가옥의 원형을 기록한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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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집에도 가격(家格)이 있다”…전통가옥의 원형을 기록한 『한옥』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7.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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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은 일종의 인포메인션 센터 역할을 했던 접빈의 공간이다. <사진=강릉 선교장 홈페이지>

강릉 선교장은 18세기 초 효령대군의 10세손인 무경 이내번이 창건한 집이다.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행랑채, 정자 등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인간미 넘치는 활달한 공간미를 간직한 대장원이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예로부터 학문과 예술에 관한 담론이 이뤄지던 지역의 문화공간 역할을 했고 활래정은 일종의 인포메이션 센터 역할을 했던 접빈의 공간이다.

서별당은 서재와 서고로 사용됐으며 동별당은 내객들과 분리해 가족들이 단란하게 지낼 수 있도록 건축됐다.

이처럼 한 채의 집에는 그 안에서 생활했던 집 주인의 생활상과 취향은 물론 안목과 철학이 깃들어 있다. 또 식구들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사람에게 인격(人格)이 있듯이 집에도 가격(家格)이 있다고 여겨 집을 하나의 주체로 간주하기도 했다.

한 가옥의 역사가 건축물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이기도 한 이유다.

신간 『한옥』(열화당)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70건의 집을 통해 사진을 중심으로 간략한 역사와 특징을 소개한다. 즉 전통가옥의 원형을 기록한 ‘우리 시대의 한옥 도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즐겨 입어 왔던 의복을 가리켜 ‘한복’이라 하고, 조선 사람들이 먹는 독특한 음식을 ‘한식’이라고 하듯이 다른 나라의 집과는 다른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집을 ‘한옥’이라고 한다.

고건축 연구가 신영훈 씨에 따르면 한옥은 구들과 마루가 동시에 구조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대청과 툇마루를 마루로, 안방과 건넌방을 구들로 구조한 형상이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19세기 말 개항기 전까지의 가옥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 초인 1450년(세종 32년) 건립된 경북 봉화의 쌍벽당(雙碧堂)으로부터 조선 말인 1885년(고종 22년) 건립된 충북 충주의 윤민걸 가옥과 일제강점기인 1912년 건립된 전남 무안의 나상열 가옥 그리고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해방 후 1947년 건립된 경북 청송의 창양동 후송당(後松堂)까지 약 700년에 걸친 전국의 전통가옥을 소개한다.

대부분은 기와집이지만 서천의 이하복 가옥이나 부안의 김상만 가옥 같은 초가집도 있다. 순천 낙안성의 김대자 가옥이나 서귀포 성읍마을의 고평오 가옥도 초가집이다.

또한 삼척의 너와집은 얇은 돌조각과 나뭇조각을, 굴피집은 참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울릉도의 나리동 투막집이나 봉화의 까치구멍집 등은 산골마을 주민들의 독특한 주거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희귀성과 역사성, 지역적 특성에서 주목되는 가옥이다.

이들 전통가옥은 건립 당시 집 주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라 건축적 성격을 달리한다.

 

이 책에 실린 집 주인들의 신분은 양반 출신의 지방 유력자들이 대부분인데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정여창의 고향에 건립된 함안 일두 고택, 숙종 때의 학자 윤증이 건립한 논산 명재 고택 등이 대표적이다.

특수층과 관련된 가옥으로는 단종의 숙부 금성대군을 모신 서울 진관동의 금성당,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의 살림집으로 지은 남양주시 궁집, 대통령이 태어난 아산 윤보선 생가, 근대 서정시인 김윤식이 태어난 강진 영랑 생가 등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의 자취를 품고 있다.

또한 강릉 선교장(船橋莊)이나 구례 운조루(雲鳥樓) 등은 안채와 사랑채는 물론 행랑채와 연못까지 갖춘 대장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가치와 품격을 한층 더 높여 주고 있다.

강릉 선교장에서 자란 엮은이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문화재를 유지·보수·관리했다는 말은 그 문화재를 끊임없이 손상시켜 온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예스런 맛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지금의 상태나마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큰 과제임을 잘 알기에 책을 통해서라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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