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치는 아이처럼 부끄러운 처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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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는 아이처럼 부끄러운 처녀처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8.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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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③ 동심(童心)’의 미학①
 

[한정주=역사평론가] 동심(童心)이란 글자 뜻 그대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천연(天然)의 본성(本性)이자 최초의 본심(本心)이다.

그러한 까닭에 예로부터 동심은 곧 천진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뜻한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동심의 미학’이란 곧 어린아이의 천진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바탕 삼아 문장을 지어야 한다는 글쓰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이 동심(童心)을 하나의 문장 미학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이가 이덕무이다. 그는 ‘영처(嬰處)의 철학’ 속에 ‘동심의 미학’을 녹여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 속에서도 오직 책을 벗 삼아 읽고 글을 짓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던 이덕무는 나이 20세가 되는 1760년(영조 36년) 3월 최초로 자신의 시문(詩文)을 모아 엮은 다음, 그곳에다가 ‘영처고(嬰處稿)’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가 생애 최초의 시문집에 그렇게 이름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이덕무가 스스로 지은 ‘영처고 자서(自序)’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글을 읽으면 글쓰기에는 기술과 방법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먼저 이덕무는 가상의 인물과의 문답(問答)을 통해 ‘영처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일러준다.

“어떤 사람이 ‘원고를 영처(嬰處)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원고를 쓴 사람이 어린아이와 처녀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원고를 쓴 사람은 나이 20세가 넘은 남자다’라고 답하겠다.

그가 다시 ‘그렇다면 원고를 쓴 사람은 어린아이와 처녀가 아니다. 그런데 원고를 유독 영처(嬰處)라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면 나는 ‘이것은 스스로 겸손함을 드러낸 것에 가까우면서 또한 오히려 자신을 찬미(讚美)한 것이다’라고 답하겠다.

내 대답에 그 사람은 크게 반발하면서 ‘그렇지 않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어린아이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자(長者: 성인)라고 해야 하고 지혜로운 처녀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부(丈夫)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가 넘은 남자가 오히려 영처(嬰處)라고 스스로 찬미했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에 마침내 글을 써 나의 뜻을 밝힌다.

예전에 내가 『영처고(嬰處稿)』의 책 첫머리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글을 짓는 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다르겠는가? 글을 짓는 사람은 마땅히 처녀처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스스로 겸손함에 가까우나 실제로는 자신을 찬미한 것임이 명백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다만 문장(文章)을 좋아했을 따름이다. 또한 글을 잘 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로지 글 짓는 것을 즐거워했다. 이러한 까닭에 글을 잘 짓지는 못하나 때때로 문장을 저술하는 것을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더욱이 지은 글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과시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명예를 구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이에 사람들이 간혹 괴이하다면서 꾸짖기도 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기 때문에 힘써 독서할 수 없었다. 이에 배우고 외운 것이 비루(鄙陋)할뿐더러 나를 이끌어 가르침을 준 스승과 친구 또한 없었고, 더욱이 집은 가난하여 책을 쌓아 둘 형편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깊이 있는 지식을 기르지 못하였다. 이에 비록 스스로 글 짓는 것을 깊이 좋아한다고 해도 그 배운 것은 민망할 정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은 ‘천진(天眞)’ 그대로이며, 처녀가 부끄러워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眞正) 그대로인데, 이것이 어찌 억지로 힘쓴다고 되는 것이겠는가?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영처고 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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