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글과 하나의 시를 지을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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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글과 하나의 시를 지을 때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9.17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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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58)

[한정주 역사평론가] 글이나 시를 하나씩 지을 적마다 때로는 사랑스러워 부처의 배에 보관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 쥐의 오줌을 받는 데 쓰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 모두가 망상의 탓이 아닌 것이 없다.

每做一文一詩 有時而愛欲藏佛腹 有時而憎欲承鼠溺 莫非妄想擾亂之. 『선귤당농소』

명말청초의 문인 장대(張戴: 장다이)는 『도암몽억(陶庵夢憶)』이라는 소품문의 명작을 남겼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한단지몽(邯鄲之夢)과 남가일몽(南柯一夢), 곧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더욱 허망한 꿈’에 비유했다. 청나라의 무력 앞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길 없어 죽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망국인(亡國人)의 회한이 가득 서려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도암몽억』에 쓴 ‘자서(自序)’에서 맹렬한 불꽃으로도 태워버릴 수 없는 것이 문인의 ‘공명심(功名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그 ‘공명심’이란 놈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처지인데도 글을 쓰고 책을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명심이란 글을 쓰는 사람의 운명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아니면 기쁨일까, 아니면 고통일까?

심지어 김수영은 내가 태어난 해인 1966년 세상에 내놓은 ‘마리서사’라는 제목의 평론에서 글 특히 산문을 쓰는 자신의 행위를 가리켜 매문(賣文)이자 매명(賣名)이라고까지 말했다.

진정 글을 쓴다는 것이 돈을 위해 자신의 글을 파는 매문(賣文)이고, 자신의 이름을 파는 매명(賣名)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렇다고 말하면 너무나 비참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참으로 솔직하지 않는 일인 것 같아 이렇지도 저렇지도 못하는 꼴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 목적도 이익도 없이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던 이덕무는 말할 것도 없고 수백 년 전의 장대나 수십 년 전의 김수영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한심한 신세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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