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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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10.29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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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④ 옛것과 새것의 변통과 통섭…법고(法古)와 온고(溫故)의 미학③
▲ 다산 정약용의 초상화.

[한정주=역사평론가] ‘옛것, 즉 고전(古典)의 내용과 뜻’을 바탕 삼아 새로운 글을 지은 경우로는 『노자(老子』에 나오는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는 구절을 취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진실한 마음을 표현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기(與猶堂記)’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1800년 나이 39세 때 정조대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보수 노론세력이 권력의 전면에 재등장한 이후 ‘천주교 문제’를 빌미삼아 자신을 비롯한 남인 개혁 세력을 탄압하자 고전(『노자』) 속 내용을 빌어 고향인 초천(苕川: 마현)에서 오직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신중하고 경계하는 삶’을 살겠다는 심정을 진솔하게 밝혔다.

“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그만둘 수 없고,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서 하지 않는 일은 그만둘 수 있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이란 항상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내켜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중단된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한 때때로 그만둔다. 이렇다면 참으로 세상천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내 병은 내가 스스로 잘 안다. 결단력이 있으나 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른다.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동하며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일인데도 마음이 움직이면 억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에 걸려 찜찜한 구석이 있게 되면 그만두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볼 줄 몰랐다. 서른이 넘어서 지난날의 잘못을 깊게 깨달았으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선(善)을 끊임없이 좋아하였으나 세상의 비방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이것이 내 운명이란 말인가! 이 모두가 타고난 내 본성 때문이니, 어찌 내가 감히 운명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노자(老子)의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이라고 했다. 이 두 마디는 참으로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싶다.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물이 뼈를 에는 듯 차갑기 때문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건너지 않는 법이다. 또한 사방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남의 시선이 자신에게 미칠까봐 염려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나서지 않는 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경전(經典)과 예절(禮節)에 대해 같음과 다름을 논하려고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해로울 것이 전혀 없었다. 하지 않아도 해로움이 없다면 부득이한 일이 아니다.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또한 그만두어도 된다.

다른 사람을 논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려 조정 신하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고 하다가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운 일은 마음에 크게 거리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크게 두려움과 꺼림이 있다면 또한 그만두어야 한다. 진귀하고 즐길만한 옛 골동품을 두루 모아볼까 하다가 이 또한 그만둔다.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공금을 멋대로 쓰고 훔치겠는가? 이 또한 그만둔다. 온 마음에서 생겨나고 뜻에서 싹튼 것은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만두고, 아주 부득이한 경우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는 일 또한 그만둔다. 진정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에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내가 이러한 뜻을 깨달은 지 이미 6∼7년이 되었다. 그런데 그 뜻을 당(堂)에 이름 붙여 달려고 했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만두었다. 이제 고향 마을인 초천(苕川)에 돌아와서야 문미(門楣)에 써서 붙이고, 더불어 이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정약용,『다산시문집』, ‘여유당기(與猶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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