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이 저마다의 모양새로 비죽배죽 솟아 있다. 그러나 바다 속을 되짚어 내려가면 언젠가는 한 몸으로 만난다.
제각각인 이들 섬의 생김만큼이나 방방곡곡 수많은 상징과 표현이 산재하지만 집단 무의식의 바다 기저에서 인류는 원형(archetype)이란 큼직한 반죽을 공유한다.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이 반죽을 조금씩 떼어 저마다 모양새를 잡고 이름을 발라 갖은 상징과 신화를 굽는다.
그래서 상징을 비롯한 온갖 가치 발현은 원형의 진동이고, 발현들의 무한 중첩이 곧 원형이다. 이를테면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원자 주변을 돈다’는 명제가 원형이라면 매순간 서로 다른 위치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관찰된 전자는 바로 우리가 의식하는 개개의 이미지나 가치인 셈이다.
OCI미술관이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2016 OCI 영 크리에이티브스(YOUNG CREATIVES)’의 마무리 전시로 임현정의 개인전 ‘마음의 섬들’을 오는 28일부터 8월21일까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전시 제목과 같은 작품명 ‘Islands of the Mind’에서 임현정은 그런 원형들이 사는 집단 무의식 나라를 둘러본다.
그것은 비록 각자의 내면에 있음에도 자신의 뜻대로 만든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도 없는 제어 불능·번역 불능의 세상이다.
종횡비가 1:8에 달하는 파노라마 신작을 필두로 10여점의 회화와 수많은 소품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 풍경을 로드뷰 촬영하듯 널찍이 두루 훑기도, 때로는 조각조각 널브러진 부스러기 이미지들에 코 닿을 듯 바짝 다가가 깊게 들여다보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그저 천방지축 중구난방일 것만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집단 무의식’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화폭에 담지만 그것은 인류 공통의 심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품 ‘Rocky Landscape’에는 마치 동화책 속 이야기에 나올 법한 굽이굽이 꼬부랑길을 두른 바위산이 등장한다. ‘어딘가에 나올 법함’은 원형에 가까운 것이 띠는 대표적 성질이다. 실제로 꼬부랑길을 두른 바위산과 같은 형식은 원형의 대표적 예시 가운데 하나다.
작가는 네덜란드의 풍경화를 참조해 상상으로 이 바위산을 창조해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위치를 관찰하려 쏜 광자에 맞는 순간 입자의 운동량이 변하는 것처럼 원형 역시 의식이 닿는 순간 무의식 차원에 머물지 못하고 밀려난다.
그래서 화면 여기저기 엿보이는 출연자들은 작가의 의식을 쐬어 이미 진동한 원형의 수많은 변신 가운데 하나다.
작품 ‘River Landscape’는 작가가 올해 초 서울의 작업실에 입주한 이후 완성한 첫 작업이다.
원뿔 형태·물·섬 등은 어김없이 화폭에 출석해 마치 수면 아래로 섬들이 이어지듯 다른 작업들과 연결되는 접점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연유를 짐작할 수 있는 이미지, 이를테면 작가가 입주하고 있는, 그래서 작업의 대부분을 낳은 스튜디오 주변의 구조물이나 풍경 조각이 뒤섞여 등장하기도 한다.
비록 그 형식은 보쉬나 브뤼겔을 비롯한 환상파의 차용에서 출항했을지라도 형태와 구성은 물론 작업과 작업이 이어져 이루는 거대한 무의식 세계까지도 이미 작가만의 독자적인 구축에 돌입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