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나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써내려가는 이익의 ‘질서(疾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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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써내려가는 이익의 ‘질서(疾書)’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8.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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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③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한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문득 찰나와 같이 찾아온 감성을 한 줄의 짧은 시에 옮겨 적는다고 해서 하이쿠를 일컬어 ‘순간의 미학’ 혹은 ‘찰나의 미학’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즐겨 쓴 소품문(小品文)은 이 ‘순간의 미학’과 ‘찰나의 미학’이 짧은 시뿐만 아니라 짧은 문장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살아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하이쿠의 발상과 묘사 방식은 이익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써내려가는 ‘질서(疾書)’의 발상이나 표현과 아주 유사하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생겨 나중에 먹으려고 종이에 싸서 상자에 넣어두었던 이익은 그 깊고 은밀한 곳을 뚫고 들어간 검은색의 작은 벌레를 발견한다. 이익은 그 순간 자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재빨리 붙잡아 이렇게 표현한다.

“굳이 하려고 한다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고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소인(小人)들이 은밀히 기회를 엿보다가 자기 뜻을 이루는 것과 유사하구나.” 이익, 『관물편』(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또한 쥐가 저장해 둔 곡식을 갉아먹고 쥐구멍 속에 살면서 간혹 나와서 고양이도 쉽게 쥐를 잡거나 쫓지 못하는데, 족제비가 오자 쥐가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쥐를 내쫓은 족제비를 이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닭장에 들어가서 닭을 잡아먹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이때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로 간략하고 절제된 한 마디의 글 속에서 무궁무진한 천하의 이치를 읽을 수 있다.

“어떤 사물이건 완벽한 것은 없다.” 이익, 『관물편』

단지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멈추기에는 『관물편』 속 글들이 너무나 필자를 사로잡고 있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해보겠다.

뽕나무를 기른 사례를 들어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보는 사람들의 아둔함을 가리켜 “어떤 땅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적은 것을 보면 그 기발한 발상과 세밀한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닷가에는 뽕나무가 없다. 사람들은 땅이 척박하고 벌레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호 옹이 뽕나무를 많이 심고 잎을 따지 못하게 했다. 잎이 점점 자라고 나서는 잎은 따되 가지는 자르지 못하게 했다. 이미 자라서 멀리 뻗친 것은 자르게 했으나 전정가위는 쓰지 못하게 했다. 무성한 잎은 따고 가지는 휘지 못하게 했다. 곧은 가지를 자르면 키가 크지 않고, 가지를 휘면 굽어서 줄기가 바로 자라지 않는다. 소나 말을 뽕나무에 매어 껍질을 상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벌레 알을 잡아서 멸종시켰다. 10여년이 흐르자 뽕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나의 밭이 뽕나무를 심기에 적당한 밭이라고 했다. 성호 옹이 말했다. ‘어떤 땅이든지 그렇지 않겠는가?’” 이익, 『관물편』(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더욱이 뿌리 때문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소나무에 송충이가 침범해 모은 잎을 갉아먹으면 소나무 역시 말라 죽는 현상을 보고서 “사물은 본래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쓰임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읽고 있자면 이익의 뛰어난 식견과 탁월한 표현력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내게 된다.

“벌레가 풀과 나무를 해쳐 잎을 먹는데 송충이라고 한다. 곧은 소나무는 잎이 무성해 사철 내내 시들지 않는데 송충이가 문득 갉아 먹어 모든 가지에 잎이 없어지면 소나무는 말라 죽는다. 성호 옹이 말했다. ‘나무가 사는 것은 뿌리에 말미암지 잎에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잎이 없어지자 뿌리가 마르는 것일까? 사람들이 다리를 가지고 달리기를 하지만 팔이 없으면 엎어지고 새가 날개를 가지고 날지만 꼬리가 없으면 떨어진다. 사물은 본래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쓰임으로 하는 것이다.’” 이익, 『관물편』(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말이나 소가 길을 가다가 싸지른 똥에는 쇠똥구리나 말똥구리가 모인다. 사람과 가축은 무심코 지나가다가 쇠똥구리와 말똥구리를 밟아 죽인다. 그런데 쇠똥구리와 말똥구리는 밟혀서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이미 밟힌 다음에야 죽은 것은 어찌할 수 없고 살아남은 것은 날아서 도망간다. 이 순간 성호는 어떤 말을 남겼을까?

“아! 너무 늦었구나.” 이익, 『관물편』

더욱이 이익은 매일 같이 접하는 자연 생태계의 이치 속에서 세상 만물은 애초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지 더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오늘날의 그 어떤 생태철학자의 논리와 주장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다.

“곡식을 심거나 짐승을 길러서 식량으로 삼고 길쌈을 하거나 누에고치로 실을 잣고 사냥한 짐승 가죽으로 갖옷을 만들어서 옷으로 삼고 나무를 잘라 들보와 서까래를 만들고 띠풀을 베어 이엉을 엮어 비바람에 대비하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하겠다. 저 미물들의 목숨은 애초부터 우리 소유가 아닌데도 우리는 그것을 취해 삶의 바탕으로 삼으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하거늘 교만을 떨면서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은 잘못이다.” 이익, 『관물편』(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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