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스토리텔링의 정체
상태바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스토리텔링의 정체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5.22 0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탐구…『스토리텔링 애니멀』
▲ 19세기 미국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 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인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든다. 수시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은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매체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친구와 떠는 수다, 혼자 있을 때 하는 공상, 잠자며 꾸는 꿈은 모두 ‘나’에 관한 이야기다.

요컨대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수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짬이 나면 모여 앉아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가 시간에 영화관에 앉아 고전에서 걸어 나온 비극적 인물의 이야기에, 하늘을 나는 액션 히어로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인류 역사 이래로 인간이 이토록 이야기를 좋아해온 까닭은 “재미있으니까!” 한마디로 요약된다.

신기한 점은 현실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말썽’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필수 요소라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갈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로 서사 연구와 스토리텔링 교재의 핵심 원리이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말썽이 일어나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며 등장인물이 겪는 끔찍한 수난에 눈을 가리지만 만약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부분 잠이 들 것이다.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설을 읽으며 울고 웃는다는 역설은 직접 정서를 체험할 때나 남이 체험하는 것을 볼 때나 똑같이 활성화하는 ‘거울 뉴런’으로 풀린다.

지난밤 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꿈의 의미는 신비한 계시가 아니라 ‘나’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뇌의 작용으로 설명된다.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겪고도 마침내 승리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보러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인과응보를 토대로 삼는 픽션이 인간의 도덕성과 사회성을 함양한다는 심리학 실험으로 뒷받침된다.

과학이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은 그들의 이야기가 왜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책, 텔레비전, 영화뿐 아니라 게임, 광고, 교육 등에서도 스토리텔링이 각광받는 오늘날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과학과 문학이 교차하는 새로운 인문학을 개척하고 있는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진화 생물학, 심리학, 신경 과학의 최신 연구를 동원해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탐구한다.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를 탐구하면서 더 나아가 이야기가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이야기 세계에 들어갈 때 인간의 정보 처리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소설에 몰입하는 독자는 비몰입 독자에 비해 신념이 바뀌는 정도가 컸다. 이야기는 감정적 반응을 유도할 뿐 아니라 이성적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는 인간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바로 19세기 미국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불러온 파장이다.

미국 남부에서 노예 엘리자가 다른 농장에 팔려 갈 위기에 처한 아들을 데리고 달아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노예 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노예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미국 남북 전쟁 중에 링컨은 소설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만나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이 이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쓴 작은 여인이군요.”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의 위력은 또한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인 홀로코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순수 혈통 민족’에 대한 히틀러의 그릇된 이상이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에 의해 빚어졌다고 진단한다.

 
인간은 이야기에 탐닉하도록 진화했다. 개인의 신념을 형성하고 사회에 공통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야기는 인간에게 귀중한 기술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언제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를 과식할 위험이 따르는 현재, 이야기는 인간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직접적인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쌍방향 이야기’인 게임이 문화 산업의 첨병으로 떠오른 동시에 게임 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제 이야기는 단지 재미와 쾌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의 사회적 삶을 헤쳐 나가도록 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