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일하기 위해 모두 일해야 한다”
상태바
“적게 일하기 위해 모두 일해야 한다”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4.07.21 0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는 ‘기본소득’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서명운동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기본소득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 등지에서는 1970~80년대부터 정치적 이슈로 오르내렸고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의 특징 중 하나는 좌파와 우파 모두가 주장하는 복지제도라는 점이다. 루뱅가톨릭대 필리페 판 파레이스 교수가 “19세기 노예해방, 20세기 보통선거권에 이어 21세기는 기본소득이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기본소득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더 기대를 받고 있는 제도다.

서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복지제도가 취약한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기본소득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 모녀 동반 자살 사건을 비롯해 최소한의 생계조차 누리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진 탓이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매달 얼마씩 평생 지급하는 돈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돈은 사람마다 받는다. 한 살 아기와 아흔 노인이 받는 돈이 같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회에 이롭고 이로운 활동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 돈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제도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기초생활수급권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든 없든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실업수당은 해고나 권고사직이 아닌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경우에는 받을 수 없다. 이처럼 현행 복지 제도는 수급기관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얼마나 열심히 취직하려 애썼는지 증명하는 등 굴욕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최소한의 존엄마저 버려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이러한 모든 조건을 없애고 수령자가 기본소득 제도를 알든 모르든 자동으로 평생 지급되는 돈이다. 극빈자에서 재벌 회장까지 다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만 골라 준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낙인을 찍는 행위고, 그것이야말로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본소득은 얼마면 적당할까. 이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단순히 최저 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의 돈을 지급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 수령자들은 기본소득으로 필수 재화와 서비스를 쓰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생활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소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각 개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보장을 해 주어야 한다.

그 경우 사람들은 처음 잡히는 아무 일에나 매달릴 필요가 없고 착취당하는 임금노동자 생활을 체념하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기본소득을 믿고 다들 일에서 손을 떼면 어쩌냐는 것이다. 1970~80년대 미국에서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그것은 기우일 가능성이 많다.

결과적으로 노동 양의 감소 현상은 예상한 것보다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실험 전체를 분석한 경제학자 마이클 킬리(Michael C. Keely)는 전체 노동시간에서 평균 7~9%가 줄었다고 결론을 냈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자이자 고용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홀(Robert Hall)은 이러한 노동시간의 감소는 직업 하나로는 생계를 잇기 곤란한 이들이 일이 끝난 후 하던 아르바이트를 줄인 것이거나, 여성이나 학업을 마치지 않은 성인들이 노동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했다.

그렇더라도 왜 내가 힘들게 일해서 낸 세금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반감은 쉬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일과 사회적 부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써야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바티스트 밀롱도(Baptiste Mylondo)는 그의 저서 『조건 없이 기본소득』(바다출판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은 ‘그릇된 통념’이며 개개인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고 강조한다. 히키코모리들조차 말이다.

혹시 ‘히키코모리’가 진정한 무임승차자는 아닐까? 히키코모리들은 ‘그들의 가장 기초적인 생명 활동에 필요한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방문을 굳게 잠근다.’ (…) 히키코모리의 특징 중 하나는 비디오게임, 인터넷, 만화 등이 안내하는 가상세계로 도피하여 안식을 얻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이들 또한 엄밀히 말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비활동자’는 아니다. 나름의 활동을 하며, 그것도 엄청난 열정을 갖고 한다. 다만 홀로 활동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이다.”

또한 그는 사회적 부에서 ‘부’란 의미가 경제적인 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좋은) 인간관계, 연대감’ 등도 사회적 부라는 것이다. 돈은 결국 여러 사회적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란 지적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저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재원이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적 제도라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밀롱도는 재원을 마련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기본소득 지지자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방법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원 마련 문제는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정책의 문제”라고 본다. 즉 정책 입안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부추겨야 하는 건 시민들이다.

그는 여러 방안 중 기존 예산을 재분배해 마련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토빈세·탄소세·초고소득자 과세를 비롯해 부가가치세·소득세 등으로 보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세금을 거둬 마련하는 방법을 지지하고 기존의 복지 제도 예산 일부를 끌어다 쓰는 방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가 “사회보장제도 개선과 강화를 의미하지 약화는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기본소득이 실업수당이나 퇴직연금 같은 보험적 성격의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조세 저항에 대해선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세금을 더 올릴 경우 대부분 가정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며,“어떤 재원 마련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회 변화와 소득 재분배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도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밀롱도는 기본소득보다 먼저 완전고용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에 간략히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간 우리는 더 일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 아니라 일을 줄이기 위해 싸워 왔음을 상기시킨다. 일할 권리란 “오늘날까지 신기하게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허구이자 환상적 개념이며, 단지 위안을 주는 믿음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고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현실을 전제했을 때 기본소득을 지급해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또한 정말 일하고 싶은 사람만 일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한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나누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다음처럼 구호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일하기 위해 적게 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적게 일하기 위해 모두 일해야 한다.”

일을 줄이고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면 삶의 방식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간 우리는 더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에 다니는 대신 기본소득만 받으면서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기로 한 사람이라면 자연 덜 소비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이는 크게 보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과잉 생산, 과잉 소비라는 자본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한 방법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은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이롭다.

밀롱도는 일하느라 인생을 더는 소진하지 말자고 거듭 강조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