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폭력성의 뿌리…‘신정정치와 세속국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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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폭력성의 뿌리…‘신정정치와 세속국가의 딜레마’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8.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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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을 비난하는 손문상 화백의 작품 'Gaza, 21세기 아우슈비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50일간의 교전 끝에 지난 26일 무기한 휴전에 합의했다.

지난달 8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시작된 이래 팔레스타인 2143명, 이스라엘 7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의 70% 정도가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민간인 사망자는 6명에 그쳤다.

중동의 일간지 ‘걸프뉴스’는 설문조사 결과 가자지구 학생의 57%는 학교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72%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국가를 세우고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선언한 이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아랍 국가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행위에 전 세계는 ‘악의 축’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비극적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이 약자인 팔레스타인을, 심지어 비무장 여성과 어린이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두고 독일의 나찌당과 다를 것이 뭐냐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인들은 고대에 국가를 이루고 자신들에 관한 기록을 성경에 남긴 민족 정도로 유대인을 이해해 왔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했을 즈음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학살당했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국가를 설립했지만 가자지구를 둘러싼 끊이지 않는 분쟁과 약자를 공격하는 ‘양의 탈을 쓴’ 국가 정도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간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는 이 같은 유대인의 모습 안에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말한다.

저자인 비판적 저널리스트 폴 존슨에 따르면 유대인은 집도 없이 떠돌며 상처 입기 쉬운 인간의 상징이자 완벽을 추구하는 맹렬한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고기 가마’와 안전을 갈망하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실천하기 힘든 율법에 순종하기를 원했고, 또한 한없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원했다.

바로 여기에 신정정치의 도덕적 우월성과 자국민을 지킬 수 있는 세속 국가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고대 유대 세계의 딜레마가 있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지금 우리 시대에 이스라엘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도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과 적대적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자비하게 행동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딜레마는 계속된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교의 규범과 관습을 포기하지 않았던 디아스포라, 게토와 홀로코스트를 거쳐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하기까지의 과정을 탐구한다.

역사에는 목적이 있고 인류에게는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세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유대인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경과 고고학 자료를 촘촘히 엮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족장들과 초기 이스라엘 백성을 역사 속에 배치시키는 한편 엄청난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건국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차례차례 완성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전개로 성경과 역사, 이야기와 해석의 조합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역사는 2000년이지만 유대인의 역사는 4000년에 달한다. 기독교의 역사 못지않게 유대인의 역사 역시 전 세계 곳곳에 침투했고 그 모든 곳에 독특한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유대인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은 단순히 한 민족의 역사를 뛰어넘어 세계 전체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유대인의 역사는 박식하고 똑똑한 피해자의 관점에서 본 세계사라고 말한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이해하려면 떠돌이와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세속적인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기까지, 유대인이 지나온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인류 사회가 똑같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역사다. 모든 민족은, 유대인의 표현으로 예루살렘을 세우기를 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평원의 도시를 갈망한다.

모두가 유대인과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살육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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