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활’ 전시회에 가짜 고종 활…종로문화재단, 결국 유물 설명문구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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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활’ 전시회에 가짜 고종 활…종로문화재단, 결국 유물 설명문구 교체
  • 한정곤 기자
  • 승인 2021.05.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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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박물관에 보관중인 고종 황제의 '호미궁'(왼쪽)과 '황제의 활' 전시회에 전시된 각궁.
육군박물관에 보관중인 고종 황제의 '호미궁'(왼쪽)과 '황제의 활' 전시회에 전시된 각궁.

고종 황제의 활이 아닌 가짜 활을 전시하고 개막한 ‘황제의 활’ 전시회가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결국 진품이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개막 나흘 만에 유물 표기를 수정했다.

25일 종로문화재단에 따르면 황학정국궁전시관은 지난 22일 ‘황제의 활’ 展 개막식을 갖고 상설전시에 들어갔다.

개막식에는 김영종 종로구청장과 여봉무 종로구의회 의장을 비롯해 다수의 구의회 의원 등이 참석했다.

황학정국궁전시관을 전면 개편해 새롭게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의 국궁문화, 황제의 활터, 조선의 비밀병기, 세계의 활, 활 재료와 도구 등에 대한 다양한 활과 화살 등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영상실과 자료실을 새롭게 구축해 다양한 매체로 우리 활의 우수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운데에는 “고종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습사용 활”이라는 설명과 함께 ‘호미궁’도 전시했다. ‘황제의 활’이라는 전시 타이틀에 걸맞게 ‘호미궁’으로 소개된 활의 주인이 고종 황제라는 점은 당연하다. 이를 의심할 관람객도 없다.

그러나 전시된 활은 1976년 중요민속자료 제35호로 지정된 고종 황제의 ‘호미각궁(虎尾角弓)’과는 다른 활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호미각궁’은 활에 사용된 물소뿔, 즉 흑각(黑角) 가운데에 한 줄로 ‘人’자 모양의 황백색 얼룩무늬가 있어 마치 호랑이 꼬리와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물소뿔 양끝에는 각각 ‘호미(虎尾)’와 ‘주연(珠淵)’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어 활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고종 황제의 어호(御號)가 주연이기 때문이다.

이 활은 당시 서울의 궁장(弓匠)이었던 장문환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제의 활' 전시회 포스터.
'황제의 활' 전시회 포스터.

반면 ‘황제의 활’ 전에 전시된 활은 한쪽 흑각에 부분적으로 ‘人’자 모양의 얼룩무늬가 확인되지만 활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어떠한 글귀나 표식은 없다. 얼핏 보아도 100년이라는 세월의 더께를 찾기에도 부족하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육군박물관에 보관된 ‘호미각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유물을 전시했다”면서 “전혀 진품이 아닌 유물을 진품이라고 전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물을 수집하고 기증받은 실무자가 따로 있다”면서 “누군가로부터 기증을 받았고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진위여부는 가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호미각궁’ 외에 또 다른 고종 황제 활로 추정되는 활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어궁(御宮)이 ‘호미각궁’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궁계는 물론 황실문화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유물을 수집하고 기증받았다는 실무자와 전화 연결을 시도하고 있던 중 전시 실무를 맡았던 종로문화재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고종의 활이 아니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고종의 호미각궁과 비슷한 활을 구해 전시했을 뿐”이라며 “황제의 활이라고 불릴 만한 활은 전시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흑각에 ‘人’자 모양의 얼룩무늬가 있으니 호미궁은 맞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호미궁은 고종 황제의 활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푸른 기와집이라고 모두 청와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가짜 활이 전시된 배경에 대해 그는 “육군박물관에 ‘호미각궁’이라고 특정하지 않고 유물 임대에 대해 포괄적인 문의를 했지만 황학정국궁전시관이 아직 박물관도 아니고 이를 관리할 학예사도 배치돼 있지 않는 등 유물 임대에 따른 제반 조건을 갖추지 못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비슷한 활을 전시함으로써 고종의 활에 대한 애정과 보급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종로문화재단은 황학정국궁전시관 개관 8주년을 맞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황제의 활’을 테마로 고종황제의 활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고종이 그토록 알리고자 했던 자랑스런 우리의 전통문화 국궁(國弓)과 고종의 활사랑이 오늘날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와 활의 제작과정 그리고 우리 활의 우수성을 전시를 통해 알리고 다른 나라 활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 것이다.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타이틀과 유물 전시 등 다소 무리한 욕심을 냈던 것으로 이해된다.

종로문화재단은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었던 모든 부분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면서 “‘황제의 활’이라는 타이틀로 자칫 고종이 사용하던 활을 전시한 것으로 오해할 관람객들을 위해 전시관 입구 게시판과 리플릿에 이를 명시하고 고종 황제 활로 소개된 ‘호미궁’에도 수정 설명서로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고종의 습사용 활이라고 소개했던 유물 설명 전(왼쪽)과 후.
고종의 습사용 활이라고 소개했던 유물 설명 전(왼쪽)과 후.

또한 해설사들에게도 활쏘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얼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했던 고종의 남달랐던 활 사랑을 강조해 줄 것을 재차 주지시켰다고 덧붙였다.

김기훈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군사학)는 “‘황제의 활’ 전시회에 황제의 활이 없다는 점은 분명 아쉽다”면서도 “종로문화재단이 전시회 초기에 지적된 오류를 신속히 인정하고 바로 잡아 고종 황제의 활에 대한 사랑에 집중하겠다는 한 점은 높이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4년 9월 개관한 황학정국궁전시관은 종로구청 산하기관인 종로문화재단이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박물관 등록에 따른 구립박물관으로 개관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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