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곡(潛谷) 김육② “군자는 숨어 살면서 고요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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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곡(潛谷) 김육② “군자는 숨어 살면서 고요하게 기다린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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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㉗
▲ 잠곡 김육의 화상첩.

[한정주=역사평론가] 아무런 생계 수단 없이 무작정 잠곡으로 옮겨온 김육은 처음 토굴을 파서 거처를 꾸미고 살았다. 몸소 화전(火田)을 일구고 농사짓다가 그것으로도 연명할 수 없으면 숯을 구워 한양까지 무려 130여리의 길을 걸어가 팔기도 했다.

이렇듯 농부의 삶을 살면서 김육은-자신이 타고난 신분의 운명대로 벼슬길에 올랐다면 평생 겪어보지 않았을-백성의 곤란과 고통을 몸소 뼈저리게 체험했다. 특히 김육은 다음해 가족들까지 모두 잠곡으로 데려오면서 한양을 향한 한 가닥 마음까지 끊어버렸다.

그런데 잠곡에 은둔한 김육은 비록 벼슬의 뜻을 버렸을지는 몰라도 잘못된 세상을 향한 비분강개한 뜻까지 접은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김육이 잠곡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지은 회정당(晦靜堂)이라 이름 붙인 작은 집의 대들보에 올린 ‘상량문(上樑文)’과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계곡(谿谷) 장유가 쓴 ‘회정당기(晦靜堂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서 회정당(晦靜堂)은 ‘군자이회처정사(君子以晦處靜俟)’, 곧 ‘군자는 숨어 살면서 고요하게 기다린다’는 옛 글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이에 감히 군자의 참된 앎을 말하고 등용되면 나아가 행하고 버려지면 물러나 은거하는 것이니 공자의 밝은 가르침을 따르기를 소원하는 도다.

이미 몸을 의탁할 곳이 있으니 바라건대 무릎 펴고 편안하게 쉴 만하도다. 이 집 짓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고 어두워서 인간사에는 모두 졸렬하도다. 어려서는 학문을 좋아해 항상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지지 않을 것을 기약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능력이 되지 않아 오히려 속된 선비들에게 비웃음만 받았도다.

대범하고 솔직해 시속(時俗)과 어울리기 어려웠고 세속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며 멀리 유람하였도다. 비바람 불어 닭이 우니 북쪽의 문에 나아가 걱정하며 술에 취했고 구름 뚫고 하늘 속으로 기러기 날아가니 동쪽의 언덕 향해 슬픈 노래 불렀도다.

저 근평(斤平: 가평)의 서쪽을 돌아다보니 청덕동(淸德洞)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땅은 넓어 농사짓기 마땅하고 샘물은 맑아 생활하기 알맞도다. 푸른 산의 절벽은 만 길이나 높이 솟아 늠름하기가 마치 당당한 고인(高人)과 같고 짙푸른 못은 천 척(尺)이나 맑게 모여 그 속에 신물(神物)이 잠기고 서려 있도다.

탁 트인 들판과 적막한 물가는 이른바 광대하고도 심오하도다. 고라니와 사슴은 무리 되고 푸른 소나무는 벗이 되니 가히 넉넉하고 노닐 만 하도다. 굽이굽이 이끼 덮인 바위는 모두 엄자릉(嚴子陵)이 낚시하기에 마땅하고 가꾸고 일군 벌판과 진펄은 진실로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경작하기에 알맞도다. 처자식과 의논하니 모두 좋다 하고 거북점을 쳐보니 길하다고 하였도다.

이에 세 칸 모옥(茅屋) 짓고 백년 은둔처로 삼으려고 하였도다. 대강 짓고 대강 이루었으나 오히려 신도반(申屠蟠)의 나무집보다 낫고, 여기에 거처하고 여기에 머무르니 제갈량(諸葛亮)의 초려(草廬)보다 덜하지 않도다.

회정당(晦靜堂)이라고 이름 붙여 문 위에 걸고 거처와 은둔의 뜻을 부치는 도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품는다는 함장(含章)의 때와 뜻을 살피니 어찌 문장으로 꾸미겠는가. 거정(居貞)의 효사(爻辭)를 완미하여 스스로 즐거워 할 따름이도다.

부족하나마 그대로 누워서 쉬고 여기에서 소요(逍遙)하도다. 몇 길이나 높은 당(堂)은 내가 뜻을 얻어도 짓지 않고 천 칸의 커다란 집 또한 추위나 가리는데 마음이 있을 뿐이도다. 이곳 두 대들보에 떡을 던져서 육위(六偉)의 움직임을 미력하나마 돕는 도다.

‘동쪽 대들보에 떡 던져라 / 큰 계곡 가운데에 폭포가 날아오르듯 걸려있네 / 계곡 입구 소나무 숲 바윗돌 위에 / 차가운 소리에 푸른빛은 사계절이 똑같구나 / 서쪽 대들보에 떡 던져라 / 멀고도 먼 역참(驛站) 가는 길 빙 돈 개울 접해있네 / 다리 건너는 나그네 어찌 그리 다급한가 / 오고 가고 오고 가니 해는 서산에 떨어지네 / 남쪽 대들보에 떡 던져라 / 말산 높이 솟아 깊은 못에 꽂혔네 / 천 그루 고목이 빽빽하고 울창하게 얽혀있네 / 한 줄기 가벼운 연기 어두운 새벽 끼어 있네 / 북쪽 대들보에 떡 던져라 / 망망하게 먼 들판 산등성이 연이어 있네 / 밭두둑 끝 바라보니 마치 풀이 자리 편 듯하네 / 이따금 농부 노래 목동 피리 소리 들려오네 / 위쪽 대들보에 떡 던져라 / 흰 구름은 조각조각 바람 타고 날아가네 / 무심하게 펴다가 말다가 푸른 하늘에 떠 있네 / 개울가에서 두건 벗고 하루 종일 바라보네 / 아래 대들보에 떡 던져라 / 세상 피해 사는 사람 집에 한 점 티끌 떨어지지 않네 / 앞마당은 시원하게 뚫려 있어 산골짜기 시냇물 굽어보네 / 울타리는 기울고 듬성듬성하니 맑고 깨끗하게 고쳤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上樑)한 후에 구름숲이 색깔 바꾸고 산과 물이 빛을 더해 희미하고 푸르스름하게 떠다니는 안개를 항상 마루 창문 통해 마주 대하게 하소서. 계절 따라 달라지는 경치 더욱 빼어나고 호랑이와 표범, 뱀과 이무기 숲속에서 자취 감춰 환란과 재해 모두 없애소서.

집안은 안녕하고 이웃 마을이 화목하면 곳곳마다 꽃과 버들 저절로 피니 어찌 무례하게 지휘함이 방해가 될 것이며 가는 곳마다 즐겁게 논매고 밭을 가니 유사(有事)의 징발을 볼 수 없고 산중(山中)의 지극한 즐거움을 영원히 보존하고, 세상 밖 번잡한 말을 듣지 않게 하소서.” 『잠곡유고』, ‘회정당상량문(晦靜堂上樑文)’

김육은 잠곡에 새로이 지은 집에 ‘회정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상량문까지 지어 ‘숨어서 고요하게 살아가는 뜻’을 붙이고 구석구석 밭을 갈고 김을 매며 산중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세상 바깥의 번잡한 말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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