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錦南) 최부…전라도 나주와 해남에서 취한 호(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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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錦南) 최부…전라도 나주와 해남에서 취한 호(號)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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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㉕
▲ 최부 초상화.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연연(淵淵).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표해록(漂海錄)』(혹은『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의 저자다.

그는 나이 34세 때인 1487년(성종 18년)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도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급하게 고향인 나주로 돌아오던 중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명나라 절강성 영파현에 다다랐다.

그 후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거쳐 육로를 통해 반년 만에야 한양에 돌아왔고 자신의 경험담을 기록한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했다.

성종 때 중앙 관직에 나간 최부는 사림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붕당(朋黨)을 결성하고 국정을 비방했다는 누명을 쓰고 함경도 단천(端川)으로 유배되었고 뒤이은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참형을 당했다.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해남(海南) 정씨를 부인으로 맞았는데, 이 때문에 처가인 해남을 근거지 삼아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당시 그의 학문적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호남 사림을 대표하는 명문가인 해남 윤씨, 선산 임씨, 선산 유씨 등 세 가문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호남 사림을 대표하는 명사(名士)답게 자신의 고향인 나주의 옛 이름 금성(錦城)에서 ‘금(錦)’자를 취하고 처가이자 주요 활동 무대였던 해남(海南)에서 ‘남(南)’자를 따와 ‘금남(錦南)’이라고 호를 지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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