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회 원하는 표준 인간 훈육·양성 최전선은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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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 원하는 표준 인간 훈육·양성 최전선은 ‘가정’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8.0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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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⑮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나는 ‘실격당한 인간’을 희망한다Ⅱ
가족 전부가 제각기 독상을 늘어놓고 밥을 먹는 일본인의 식사 관습. [일본 드라마 '료마전' 중에서 캡처]
가족 전부가 제각기 독상을 늘어놓고 밥을 먹는 일본인의 식사 관습. [일본 드라마 '료마전' 중에서 캡처]

[한정주=고전연구가] 『인간실격』의 히어로 요조는 자신의 삶을 가리켜 “부끄럼 많은 생애”였다고 회상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에 대해 아무런 성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일종의 자각(自覺)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조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요조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켜 “음산한 도깨비 같은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도깨비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과 함께 살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함께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요조는 세 장의 사진 속 얼굴을 통해 그 시대 표준 인간, 즉 황국신민과 전쟁기계의 역할에서 벗어난 자신의 생애를 반추한다. 세 장의 사진 속 얼굴은 곧 ‘실격당한 인간의 삶’을 희망한 요조의 자화상이자 다자이 오사무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학교라는 제도를 접하기 이전에 우리를 그 시대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으로 훈육하고 양성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우리는 가장 먼저 가정에서 밥 먹는 습관, 말하는 습관, 예절이라는 관습, 공동체의 규칙 등 일상생활 속에서 요구되는 표준 인간의 삶을 교육받는다.

조선 시대 식사 습관·예절과 우리 시대 식사 습관·예절은 다르다. 그것은 조선 시대가 원하는 표준 인간과 우리 시대가 원하는 표준 인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습관·관습·규칙은 절대로 옳다고 여겨지는 ‘진리’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식사할 때 왼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는 것을 금기하는 문화에서 가장 먼저 오른손을 사용해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도록 훈육하는 곳은 가정이다. 오른손을 사용해 식사하는 관습은 의문의 여지없는 진리이다.

만약 오른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는 식사 예절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여기는 문화에서 어린아이가 왼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강제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그 어린아이의 식사 습관과 예절을 바로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습관·관습·예절·규칙의 진리는 어떤 의문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른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고 식사하는 것이 공동체의 관습이고 규칙이기 때문에 무조건 오른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고 식사해야 한다. 왼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공동체의 관습·예절·규칙의 진리를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간을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으로 훈육하고 양성하는 최전선의 공간은 바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집안 식구들 사이에서 도깨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원하는 가정의 습관·관습·예절·규칙에서 벗어난 행동과 사고 때문에 요조는 언제나 그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예를 들어 가족 전부가 제각기 독상을 늘어놓고 밥을 먹는 그 시대 일본인의-어찌 보면 아주 숭고한 가족 의식과도 같은-표준적인 관습은 요조에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한 식사 예절이었다.

“저에게는 식사 시간이 점점 더 끔찍해졌습니다. 저는 그 어두컴컴한 방의 말석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듯한 기분으로 밥알을 입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져다가 쑤셔 넣으며 생각하곤 했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왜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일까. 정말 모두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군.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어서, 가족이 삼시 세끼 시간을 정해 놓고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서 밥상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알을 씹는 것은 집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하는 의식인 것은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1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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