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河西) 김인후…조선 사림의 본산 중 한 곳 ‘황룡강의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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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河西) 김인후…조선 사림의 본산 중 한 곳 ‘황룡강의 서쪽’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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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㉞
▲ 하서 김인후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후지(厚之). 김인후는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리에서 태어났다.

나이 31세 때인 1540년(중종 35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이후 뛰어난 학문과 높은 식견을 인정받아 훗날 인종(仁宗)이 되는 세자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인종이 즉위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 수많은 사림의 인사들이 화를 입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그의 학문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견줄 만해 수많은 호남의 선비들이 그를 찾아와 성리학을 배우고 교유했다.

이로 인해 그는 오늘날까지 장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 마을에서 태어난 고봉 기대승과 함께 호남사림을 기르고 빛낸 대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특히 그는 호남 출신의 사림으로는 유일하게 성균관의 문묘에 종사된 동방18현(東方十八賢) 중의 한 사람이다. 정조가 ‘성리학과 문장 그리고 절의(節義)를 모두 갖춘 사람은 오직 하서 김인후’ 한 사람 뿐이라고 할 만큼 사림의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높다.

김인후가 살았던 장성의 고향집은 병풍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성읍과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가로질러 흘러가다가 영산강에 합류하는 황룡강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황룡강의 서쪽’을 뜻하는 그의 호 ‘하서(河西)’는 이황의 안동, 조식의 합천, 이이의 파주처럼 조선시대 사림의 본산 중 하나가 장성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도 장성읍에서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필암서원(筆巖書院: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소재)을 찾아가려면 황룡강을 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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