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 속 겨울 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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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 속 겨울 초가집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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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59)
 

[한정주=역사평론가] 을유년(乙酉年 : 1765) 11월에 형재(炯齋 : 이덕무의 서재)가 추워서 뜰 아래 작은 모옥(茅屋)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집은 매우 누추해 벽에 얼어붙은 얼음이 뺨을 비추고 구들의 그을음 때문에 눈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아랫목이 울퉁불퉁해 그릇을 놓으면 물이 반드시 엎질러지고, 햇살이 비추면 쌓인 눈이 녹아 흘러 썩은 띠 풀에서 누런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방울 물일망정 손님의 도포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곤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거듭 사과했지만 나태한 성품 탓에 집을 수리하지 못했다.

어린 아우와 함께 서로 그대로 지낸 지 무릇 석 달이나 되었지만 오히려 글 읽는 소리만은 그칠 줄 몰랐다. 세 차례나 큰 눈을 겪었는데 매번 한 차례 눈이 올 때마다 이웃에 사는 작달만한 키의 노인이 반드시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와서 문을 두드리며 중얼중얼 혼잣말로 ‘가련하구나! 연약한 수재(秀才)가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눈을 쓸어 먼저 길을 낸 다음 문 밖에 있는 눈 덮인 신발을 찾아내 눈을 탈탈 털어내고 말끔하게 청소했다. 쌓인 눈은 둥근 모양으로 세 덩어리를 만들어놓았다. 나는 이미 이불 속에서 고서(古書)를 벌써 서너 편이나 외웠다.

지금 날씨가 자못 풀렸으므로 마침내 서책을 챙겨서 서쪽의 형재(炯齋)로 옮겼다. 그러나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에 쉽게 떠나지 못했다. 몸을 일으켜 서너 차례 주변을 돌다가 곧바로 형재로 나가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붓과 벼루를 정돈하고 도서(圖書)를 검열하였다.

그런 다음 시험 삼아 앉아보았더니 또한 오랜 시간 객지(客地)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붓과 벼루와 도서들이 마치 자식과 조카들이 나와서 인사하는 것만 같았다. 비록 면목(面目)이 다소 생소하다고 해도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어루만지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저절로 억제할 수 없었다.

아아! 이것이 인정(人情)인가. 병술년(丙戌年 : 1766) 음력 정월 보름에 쓰다. (재번역)

乙酉冬十一月 以炯齋寒 移居于庭下小茅屋 屋甚陋 壁氷照頰 坑煤酸眸 下嵲屼 奠器則水必覆 日射而上 漏老雪沁 敗茅墮漿垂垂 一滴客袍 客大駭起 余謝懶不能修屋 與穉弟相守凡三月 猶不輟咿唔聲 歷三大雪 每一雪 鄰有短叟必荷篲 晨叩門咄咄自語 可憐弱秀才能不凍 先開逕 次尋戶外屨埋者打拂之 快掃除 團作三堆而去 余已被中 誦古書已三四篇矣 今天氣頗釋 遂抱書帙 西移于炯齋 有戀戀不忍離意 起身三周旋 廼出掃炯齋積埃 整頓筆硯 檢閱圖書 試安坐 又有久客還家之意 其筆硯圖書 如子姪之出拜 面目雖稍生 而憐愛撫抱 自不能禁也 吁其人情乎 丙戌上元書. 『이목구심서 2』

신변잡기나 일상생활 속 잡감(雜感) 또한 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어린 아우와 꼼짝하지 않고 글을 읽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앨범 속 사진 한 장과 같이 훗날 옛적 기록 한 편을 찾아 읽으며 젊은 시절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도 삶의 지극한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한 까닭에 사진을 찍는 열성의 10분의 1만큼만 자신의 일상생활을 글로 옮기는데 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소품문은 편지의 형식을 취해도 좋고, 수필의 형식을 취해도 좋고, 일기의 형식을 취해도 좋다. 한 줄의 글도 괜찮고, 열 줄의 글도 괜찮고, 백 줄의 글도 괜찮다.

글을 쓰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일상은 다시 발견되고 재구성되며 재창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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