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표현…가식·인위 배격한 자연의 순수한 표현과 천연의 진솔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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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표현…가식·인위 배격한 자연의 순수한 표현과 천연의 진솔한 묘사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5.08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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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82)
 

[한정주=역사평론가] 형상 밖의 아득하고 어렴풋한 것과 가슴속에 쌓인 기운을 마음으로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말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재번역)

然象外縹緲意中縕絪 心了了而口不能言也. 『이목구심서 1』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뜻과 기운을 마음속에 분명하게 갖고 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묘사하려고 하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흔하게 겪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법의 실마리가 될 만한 글이 하나 있다. 이덕무와 가장 절친한 사이였던 박제가가 이덕무의 시집인 『형암선생시집(炯菴先生詩集序文)』에 쓴 서문(序文)이다.

형암은 이덕무가 생전에 사용했던 수많은 자호(自號) 중의 하나다. 어쨌든 자연 만물을 읊은 이덕무의 시를 읽던 어떤 손님이 의아해 하며 “도대체 그의 시는 어떤 것을 취했는가?”라고 묻는다.

박제가는 “끝을 알 수 없이 아득한 산천, 맑음을 머금은 잔잔한 물, 깨끗하게 떠 있는 외로운 구름,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끊어질 듯 말 듯 쓸쓸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모두 이덕무의 시라고 대답한다.

손님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한 자연 현상은 가을이 올 조짐인데, 이덕무의 시가 그 참된 모습과 이치를 제대로 포착하고 터득해 시에 담았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에 박제가는 “단지 사이와 경계를 논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답변한다.

무슨 말인가? 시와 글의 대상이 되는 자연 현상과 그것을 시나 글로 옮기는 작자(作者)의 사이는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시적 대상과 작자의 기운 즉 감정과 생각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일체가 된다.

시적 대상과 작자가 나누어지는 분기점이자 동시에 일체가 되는 통합점이 마주치는 어느 지점이 다름 아닌 ‘사이와 경계’이다. 그리고 시적 대상과 작자가 일체가 되는 그 순간 느낀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면 바로 좋은 시가 되고 훌륭한 글이 된다.

이때의 감정과 생각은 거짓으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어서 어떻게 써도 천연의 순수한 표현과 진솔한 묘사가 되기 때문이다.

가식(假飾)과 인위(人爲)를 배격한 자연(自然)의 순수한 표현과 천연(天然)의 진솔한 묘사. 이덕무가 얻고자 하는 말과 글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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