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서 다시 태어나고 자기기만으로 담아낸 자연”…정희정·강호연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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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서 다시 태어나고 자기기만으로 담아낸 자연”…정희정·강호연 개인전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7.0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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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미술관이 선정·지원하는 OCI 영 크리에이티브(YOUNG CREATIVES) 6기 작가들의 마지막 릴레이 개인전이 23일부터 8월18일까지 열린다.

올해 릴레이 전시의 마지막은 정희정·강호연 개인전으로 OCI미술관 전시장 1층과 2층에서 각각 열린다.

▲ 정희정, 骨山-Daedunsan, 장지에 화선지 꼴라쥬, 향, 라이터, 390×180㎝, 2015.

정희정의 산수(山水)는 한지를 태워 형상을 갖춰 나간다.

산(山)과 태움은 그에게 불가분의 이야기다. 산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잦은 제사에 향불을 사르던 어머니 사이에서 나란히 자란 자매지간인 셈이다.

향불에 타고 그을린 한지의 윤곽과 색상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산세를 엮는다. 반투명한 속내를 주고받으며 희미한 외곽을 첩첩 포개 깊이를 쌓는다.

동양 회화에서 지필묵은 불가분의 수단으로 지위가 공고하다. 여느 화구가 그러하듯 종이의 여백을 채우며 형상을 입혀 간다.

그러나 정희정은 태워서 이를 거스른다. 태움이란 기본적으로 소멸의 과정이며 무얼 채운다기보다 비움과 궤(軌)를 같이한다.

또한 종이에 무언가 칠해 형상을 얻는 대신 탄 종이가 화폭에 그대로 들어앉아 형상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회화에서의 종이의 주도성을 부각한다.

그의 초기 작업은 익히 알려진 도상의 방작 형태로 종종 보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자신만의 실경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 정희정, Burning of Ridge, 장지, 라이터, 각 75×22×15㎝, 2015(부분).

특히 실경의 정석적인 답습을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 즉 태움을 거듭하며 중요한 산세를 솎는다. 산의 자잘한 표면을 버림으로 기운이 강성한 산줄기가 두드러진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산을 산답게 만드는 큰 맥과 뼈대다.

사족은 버리고 자연의 의취, 골자를 남긴다. 그래서 그의 태움은 증류와 정제의 과정이며 그렇게 걸러낸 산수는 어느 산수보다 순도 높은 산수라 하겠다. 굳이 남제(南齊) 사혁(謝赫)의 화육법(畵六法)을 빌리자면 응물상형(應物象形)보단 경영위치(經營位置)에 무게를 두고 산세 하나까지 고르고 추린 자신만의 산수인 셈이다.

강호연은 동경하던 자연으로 관객을 직접 안내하는 대신 주변의 잡동사니와 짜고 그러한 기분을 돋운다.

라디오, TV, 어항, 젖은 수건, 선풍기가 한데 모여 저마다 평소처럼 일할 뿐이건만 그 숨결이 감상자에 다다를 즈음이면 이미 잡음은 파도소리로, 물비린내는 바다내음으로, 미풍+회전은 바닷바람으로 둔갑한다.

닿을 수 없다면 닿은 셈 치는 것도 방법이다. 기분을 내는 것이다.

▲ 강호연, 산장,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4(내부).

라디오 잡음이 파도소리와 선풍기 바람이 바닷바람과 제법 비슷한 구석이야 있겠지만 둘을 헛갈려 꼼짝없이 속기엔 또 어딘가 마뜩찮다. 게다가 눈앞엔 바닷가와 별 관계가 없는 엉뚱한 물건들만 옹기종기 널브러져 있다. 가습기와 모닥불은 숫제 상극의 상종이다.

그러나 익히 아는 대로 실재와 심상의 구분선은 둔탁하다. 경험과 기억을 잘 이겨 형편대로 그은 각자의 구획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정체는 경험을 반죽해 저마다 빚은 상상이고, 인지란 여기저기 쿡쿡 찔러 그 상상을 날뛰게 만드는 것이다.

▲ 강호연, 야호를 외치는 방법, 비디오 퍼포먼스, 1분40초, 2011.

강호연은 실제 풍광과 꼭 닮은 자극을 복합적이고 공감각적인 방향으로 흩뿌린다.

관객은 기꺼이 미끼를 물어 대안의 양동이 속으로 자진 안착한다. 속고 낚이는 게 아니라 속아 주고 낚여 줌으로써 이상향에 다가간다.

그래서 강호연의 작업은 능동적 자기기만으로 이상적 풍광에 다녀오는 작업이다. 경험 대신 유사경험, 최선 대신 차선, 만족 대신 대리만족으로 갈증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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