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의 철학…“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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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물의 철학…“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7.2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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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35)

[한정주 역사평론가] 사람의 기운이 무소를 때려눕히고, 쥐의 기운으로 코끼리를 파열시키고, 메추라기가 소를 보면 어지러워서 날지 못하고, 올빼미가 방앗간을 넘으면 떨어지고, 쑥을 복령(茯苓)과 함께 빻으면 솜같이 부드럽고, 코끼리가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컹컹 짖고 가지 못한다.

뽕나무로 뱀을 태우면 발이 보이고, 쥐가 반석(礬石)을 먹으면 죽는다. 이것은 물건이 서로를 제어하는 것이다.

죽은 고양이를 이웃집의 죽소철(竹蘇鐵)로 끌면 야위고, 정철(釘鐵)로 끌면 산다. 측백(側柏)나무 가지는 불에 그을려 심고, 박송(薄松)으로 쇠뿔을 자르면 톱보다 날카롭다.

호박(琥珀)은 모시 실로 끊고 비단은 생선물로 빨고, 은(銀)은 소금으로 씻으면 광채가 난다. 두꺼비 기름은 옥(玉)을 연하게 하고, 버들가지는 거꾸로 꽂으면 수양(垂陽)이 되고, 닥나무는 끊어서 심어도 산다.

암컷 은행(銀杏)은 수컷 은행이 없으면 열매가 열지 않고 초(醋)는 상아(象牙)를 연하게 한다.

人氣屑 鼠氣裂象 鶉見牛則憊而不能飛 梟越舂舍則墜 艾同茯苓搗則軟如綿 象聞犬聲 則吼叫不復去 桑柴燒蛇則足見 鼠食礬石則死 此物之相制者也

死猫 引隣家竹 蘓 鉄枯而釘鉄則生 側栢之枝 火燒而種 薄松 斷牛角 利於鉅 琥珀 解以苧絲 濯錦於魚腥水 洗銀以塩則光燦然 蟾酥軟玉 楊枝倒揷 成垂楊 剉楮而種則成林 雌銀杏 無䧺銀杏則不宲 醋能使象牙軟. 『이목구심서 1』

이덕무는 『성호사설』을 비롯해 이익이 남긴 거의 모든 글을 탐독했다.

이익의 저서 중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관물편(觀物篇)』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여기에는 18세기 조선에 출현한 새로운 지식인의 만물을 관찰하는 철학과 글쓰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주변의 지극히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물을 관찰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짧고 간결한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 글이 다름 아닌 ‘소품문(小品文)’이다. 그런 점에서 이익의 『관물편』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의 사유 방법이나 글쓰기 방식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이 『관물편』을 들춰보면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글과 주제가 유사한 한 편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쥐가 저장해 둔 곡식을 갉아먹고 쥐구멍 속에 살면서 간혹 나오는 바람에 고양이도 쉽게 쥐를 잡거나 쫓지 못한다. 그런데 족제비가 오자 쥐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사람들은 쥐를 내쫓은 족제비를 이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족제비가 닭장에 들어가서 닭을 잡아먹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이 순간 성호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물도 완벽한 것은 없구나.”

간략한 글과 절제된 한 마디의 말 속에서 무궁무진한 자연의 이치를 읽을 수 있다. ‘관물(觀物)의 철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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