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적으로 그려낸 인간사 욕망과 무수한 굴곡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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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적으로 그려낸 인간사 욕망과 무수한 굴곡의 순환”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5.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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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도서관, 2015, Chinese ink, ink, acrylic on paper, 433x513 cm.

OCI미술관, 19일부터 우정수 개인전 ‘책의 무덤’ 전시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잔뜩 성이 난 ‘책’에서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간의 지성과 이성의 집합체여야 할 책은 인간의 탐욕을 숨기지 못하며, 서로를 물어뜯고 비웃고 악다구니를 치는 세상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정박조차 하지 못하는 인간의 역사와 운명은 막막한 우주를 떠도는 유성체나 망망대해를 배회하는 난파선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쌓이는 듯, 허물어지는 듯, 떠오르는 듯 부유하는 사물의 파편들은 무한하고 영원하고 비밀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고고학적 유물인양 익숙하고 낡은 모습이기도 하다.

생성과 소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책·서사·사건, 즉 역사의 리듬은 결코 완성되지 않은 채 세계와 거듭 갈등을 계속할 것이다. 이것을 관망하는 것은 부엉이·원숭이 등 인간이 아닌 것들의 냉정한 시선이다.

어느 곳도 아닌 곳, 이계(異界)처럼 보이는 작품 속 암흑세계는 실상 인류가 구축해 온,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포영(泡影)에 다름 아니다.

OCI미술관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16 OCI YOUNG CREATIVES’의 일환으로 오는 19일부터 6월12일까지 OCI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우정수 작가의 개인전 ‘책의 무덤’은 저마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문명과 사회에 대해 냉철하고 비판적인 통찰을 던지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전시의 주제는 작가가 2010~2012년 작업한 110여점의 드로잉 연작 ‘책의 무덤’에서 비롯했다. 인간사의 부조리함을 시니컬하게 포착한 이 연작은 독립 출판으로 출간한 소책자의 형태로 세상에 선보인 바 있다.

10여 점의 잉크화와 9.5m 길이의 대형 현장 벽화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표류해 온 인간사의 욕망과 파국, 무수한 굴곡의 순환을 우의적으로 그려낸다.

전시 도입부의 ‘밤부엉이’와 ‘부유하는 그림자들’은 관찰자로서의 부엉이를 전면에 내세워 작가의 관점을 명확히 선언하고 전시장 내 정동(靜動)의 흐름을 조성한다.

▲ 부유하는 그림자들, 2016, Chinese ink on paper, 175x138.5 cm.

맞은편 벽면을 가득 채우는 벽화 ‘서사의 의무’는 거대한 현장 작업이다. 우선 다섯 장의 잉크화를 벽면에 부착한 후 종이에서부터 시작한 그림의 흐름을 화이트 큐브로 넓혀나가며 꼬박 3일 동안 전시장 벽면에 직접 붓질을 해 완성했다.

여기에는 혼돈스러운 세상을 질주하는 유성체의 꼬리를 좇으며 지리적 좌표가 없는 숙명을 관통해 흐르는 역사의 경로와 이를 조망하는 예술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된 ‘원숭이도서관’은 천장 높이까지 꼼꼼하게 책장을 그리며 채워낸 잉크화다. 자못 진지하게 턱을 괴고 연구에 몰두한 원숭이의 모습은 얼핏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신랄하다.

정돈된 듯하면서도 무질서한 도서관은 하나의 온전한 우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탈출구 없는 진공 상자 안에 꽉 갇혀 있는 상황에서 선뜩한 문제의식을 마주하게 된다.

그 밖의 ‘시간과 방’, ‘난파선G’, ‘육식의 시간’ 등의 출품작 역시 면밀한 구성과 필치에서 젊은 작가의 진지한 고뇌와 노력이 돋보인다.

▲ 난파선G, 2015, Chinese ink, ink, acrylic on paper, 150x23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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