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은 생각했는데”…감탄만 하고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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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같은 생각했는데”…감탄만 하고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7.15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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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⑩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⑩

[한정주=역사평론가] ‘상추쌈’을 예찬하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상추쌈을 먹는 방법을 묘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음식인 용미봉탕이나 팔진고량과 같은 음식 보다 더 맛있다고 한 ‘담채(談菜)’ 역시 일상의 하찮은 일을 소재로 삼아 맛깔나게 지어낸 한 편의 희작(戱作)이다.

특히 쌍추쌈을 먹는 중에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번 크게 웃기라도 하면 밥알과 상추 잎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사방에 흩뿌려질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 앞에서는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식사나 회식 중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고 나면 상추 잎이 아주 잘 자라서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싱싱해 보인다. 커다란 동이의 물에 한참동안 상추를 담갔다가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받아 두 손을 정갈하게 씻는다.

왼손을 크게 펼쳐서 하늘에서 내리는 장생불사의 감로수를 받아먹기 위해 만들었다는 승로반承露盤처럼 손 모양을 만든 다음 오른손으로 두텁고 커다란 상추를 골라서 두 장을 뒤집어엎고 손바닥 위에 펼쳐놓는다.

이때 비로소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두드려서 마치 거위 알처럼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상추 위에 얹어놓는다.

그리고 흰밥의 가장 윗부분을 약간 평평하게 다져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고 얇게 회를 뜬 소어蘇魚(송어)를 집은 다음 황개장黃芥醬에 담갔다가 흰밥 위에 올려놓는다.

…… 눈은 부릅떠서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이고, 뺨은 잔뜩 부풀어 올라 마치 종기가 난 것처럼 보이고, 입술은 꼭 다물어 마치 옷이나 이부자리를 맞대 꿰맨 솔기와 같고, 이〔齒〕는 날래기가 마치 무언가를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저미는 것과 같다.

느릿느릿 천천히 씹다가 목구멍 아래로 서서히 삼키면 그 단 맛과 상큼한 맛이 참으로 기가 막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처음 상추쌈을 씹을 때에는 옆 사람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삼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깔깔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입에서 내뿜은 하얀 밥알이 이리저리 튀고 파란 상추 잎이 이곳저곳으로 흩뿌려질 것이다. 반드시 입에 든 모든 것을 다 뱉어내고 난 다음에야 멈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10여 차례 상추쌈을 목구멍 아래로 삼키고 나면, 나는 진실로 천하의 진기한 맛인 용미봉탕龍味鳳湯과 천하의 진귀한 맛인 팔진고량八珍膏粱과 같은 허다한 음식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이옥, 『백운필』, ‘담채(談菜)’

평범한 사람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말로도 아주 특별하고 색다르며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다는 홍길주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까닭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어질고 현명한 옛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잘 받아들였다. 어리석고 지식이 얕은 사람일지라도 대부분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법이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지독히도 멍청하고 둔하며 비루하고 저속한 손님이나 하인들조차 글 재료가 될 만한 말을 단 한 마디도 제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일찍이 손님과 마주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쇠약하고 병이 든 사람이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어깨와 넓적다리의 한 부분이라도 이불에 닿은 곳은 모두 마비가 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건강할 때는 누워 있어도 몸이 땅에 붙지 않을까요?’

이 말 끝에 손님은 이렇게 답변했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몸이 땅에 닿더라도 기운은 항상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 손님이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도 고향을 떠나면 집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 거처하더라도 몸은 편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첩을 맞아 아들을 낳아서인지 집을 떠난 후에도 마음속에 한 가닥 긴 줄이 있어 마치 내가 아이 곁에 묶여 있는 듯합니다.’

이 손님은 내가 여태껏 만나본 사람 중에서도 가장 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운이 들려 있다’거나 또는 ‘줄에 묶여 있는 듯하다’는 두 마디의 말은 글을 아주 잘 짓는 사람이나 오를 수 있는 미묘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평생 동안 알고 지내면서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단 한 마디 말이나 글이라도 문장의 재료와 표현이 되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해서 끝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은 겨우 한둘에 불과했다.” 홍길주, 『수여방필』

“문장은 반드시 새롭고 기이한 생각이나 색다른 말로 꾸며야 훌륭하다면 훌륭한 글은 평생 동안 몇 편이나 지을 수 있겠는가?

길가나 골목에서 수다 떠는 부녀자와 어린애들이 밥 먹고 차 마시며 항상 하는 말을 가져다가 글에 넣어도 일찍이 생각하지 못한 아주 특별한 표현의 문장이 나타나곤 한다. 워낙 아침저녁으로 자주 듣고 말하다 보니 너무나 익숙해져 차마 글 속에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지은 훌륭한 글을 보면서 이 글에 나타난 생각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인데 왜 이런 훌륭한 글을 짓지 못하는 것일까 갸우뚱하면서도 크게 감탄한다. 그러나 감탄만 할 줄 알고 자신은 훌륭한 글을 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사물과 대상을 상식과 다르게 바꾸어 생각해 보거나 미루어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루어 헤아려 생각하는 일을 능숙하게 할 수만 있다면 색다르고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는 다른 표현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홍길주, 『수여연필』

마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가 없다면 우리가 18세기 조선 사람들의 삶과 풍속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더욱이 김홍도와 신윤복과 같은 훌륭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이들이 그린-비록 그림으로서는 수준이 한참 떨어지지만-민화(民畵)만 해도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 시대의 삶과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너무나 흔하고 가까이 있어서 별 존재감이 없는 글의 소재라고 하더라도 특별하고 색다르며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고 또한 지금은 비록 누추하고 천박한 것처럼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사람에게서 그 존재 가치를 빛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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