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에 이름 새기느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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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이름 새기느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낫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11.1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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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㉗
▲ 중국 서안에 위치한 진시황릉.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㉗

[한정주=역사평론가] 擊壤詩云(격양시운) 平生不作皺眉事(평생부작추미사)면 世上應無切齒人(세상응무절치인)이니 大名豈有鐫頑石(대명기유전완석)가 路上行人口勝碑(노상행인구승비)니라.

(<격양시>에서 말하였다. “평생 동안 눈살 찌푸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응당 이를 가는 원수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크게 이름을 알리려고 어찌 단단한 돌에 이름을 새기겠는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비석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소강절의 『격양집』에 실려 있는 시의 일부이다. 중국 역사상 비석에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새겨서 천하 만세에 크게 남기려고 했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진시황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그는 중국을 통일한 다음해인 기원전 220년 첫 순행부터 기원전 210년 마지막 순행에서 객사(客死)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천하 순행을 다녔다.

그리고 진시황은 천하 순행 때 자신이 거쳐 갔던 주요 장소마다 일종의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진시황의 비문(碑文)은 6개가 있다. 특히 진시황은 중국 각지의 명산(名山)에 자신이 이룬 업적을 찬양하고 공덕을 기리는 글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당시까지 전해져 오는 비문이 모두 7개라고 했다 ① 태산(泰山) ②낭야대(琅琊臺) ③ 지부산(之罘山) ④ 동관(東觀) ⑤ 갈석산(碣石山) ⑥ 회계산(會稽山) ⑦ 시황소립각석방각석사(始皇所立刻石旁刻石辭) 등이다.

그런데 진시황의 천하 순행은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하여 동요하고 혼란에 빠져 있던 민심을 위무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포 정치와 법치(法治)에 의존해 천하의 백성들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까닭에 진시황은 천하 순행 때 들렀던 명소와 명산마다 ‘자신의 위대함과 제국의 무궁함’을 찬양하고 기리는 비석을 열성을 다해 세우면서도 정작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을 위로하는 일에는 도통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차례나 천하 순행에 나섰지만 진시황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은 더욱 멀어지고 여론은 더욱 나빠졌을 뿐이다.

이 때문일까. 진시황은 천하 순행 때마다 불미스러운 일과 마주쳐야 했다. 2차 순행 때는 상산(湘山)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 강을 건너기가 힘들게 되자 죄수 3000명을 시켜 나무를 모조리 잘라 민둥산을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3차 순행 때는 훗날 한나라 고조 유방의 핵심 참모가 된 장량이 보낸 자객을 만나자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려 천하를 공포에 떨게 했다.

더욱이 마지막 5차 순행 때는 예기치 못한 병을 얻어 화려한 궁궐이 아닌 길에서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진시황의 폭정과 악행에 대한 하늘과 민심의 보복 때문이었는지 평소 총애하던 환관 조고의 ‘유언장 조작’으로 태자 부소는 자결하고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막내아들 호해가 제2대 황제가 되어 진나라를 멸망의 길로 밀어 넣었다.

진시황은 자신의 위대한 업적과 공덕을 단단한 돌에 새겨서 천하 만세에 이름을 크게 남기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진시황은 폭정과 악행을 일삼은 폭군(暴君)일 뿐이었다.

20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는 진시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진시황이 천하 만세에 크게 이름을 남기려고 돌에 새긴 위대한 업적과 공적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폭군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단단한 돌에 자신의 업적과 공덕을 새겨 비석을 세우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바른 말과 훌륭한 행동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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