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욕망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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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욕망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6.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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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⑭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사랑한다’는 말의 의미Ⅰ

[한정주=고전연구가] 아무런 예고 없이 느닷없이 찾아드는 삶의 최대 사건을 꼽는다면 단연 ‘사랑’이라는 감정을 꼽을 수 있다. 사랑만큼 다루기 힘든 감정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현명한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대개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곤 한다.

“나는 저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심지어 나 자신보다 더 저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이 의미는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랑이란 과연 상대방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자신보다 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일까.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는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캐서린 언쇼, 에드거 린튼의 평생에 걸친 욕망·집착·복수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캐서린 언쇼의 아버지 언쇼씨가 리버풀에 갔다 오는 길에 이름 없는 고아 한 명을 집에 데리고 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한적한 시골 기머튼의 대지주이자 ‘워더링 하이츠’라고 부르는 대저택의 주인이기도 하다.

어쨌든 언쇼씨는 새카만 머리와 까만 얼굴에 누더기를 걸친 이 고아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히스클리프’라는 어릴 적 죽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 고아에게 준 것으로 봐서 언쇼 씨는 죽은 아들을 대신해 하나님이 보내준 아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아들 힌들리 언쇼나 딸 캐서린 언쇼보다 더 히스클리프를 귀여워하고 사랑했다.

히스클리프는 언쇼 씨의 사랑 덕분에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으며 교육받고 성장했다. 하지만 언쇼 씨의 아들 힌들리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자기 아버지의 애정과 자신의 특권을 가로채는 놈’으로 생각해 증오했다. 반면 언쇼 씨의 딸 캐서린 언쇼는 가장 큰 벌이 히스클리프와 떼어놓는 일일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언쇼 씨가 살아있는 동안 힌들리 언쇼의 증오하는 마음이나 캐서린 언쇼의 좋아하는 마음은 히스클리프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쇼 씨가 죽으면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 그리고 힌들리 언쇼의 운명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언쇼 가문의 상속자이자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주인이 된 힌들리 언쇼는 히스클리프가 누린 모든 혜택을 박탈하고 하인들이 있는 데로 쫓아버렸다.

또한 글을 배우지도 못하게 하고 농장에서 일하는 다른 젊은이 못지않게 고된 일을 시켰다. 이 때문에 캐서린 언쇼가 교양 있는 숙녀로 성장하는 동안 히스클리프는 거칠고 천박하고 무식한 하인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힌들리 언쇼의 구박과 모욕에도 서로를 좋아하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의 마음은 큰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언쇼 가문과 더불어 기머튼 지방을 대표하는 또 다른 대지주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상속자 에드거 린튼이 등장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파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에드거 린튼을 만나면서부터 캐서린 린튼은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커다란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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