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폭력에 맞선 인간 존엄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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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폭력에 맞선 인간 존엄의 절규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8.1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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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⑮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나는 ‘실격당한 인간’을 희망한다Ⅲ
오구리 슌 주연 일본 영화 인간실격 중에서
오구리 슌 주연 일본 영화 <인간실격> 중에서

[한정주=고전연구가] 가정의 관습과 예절에서 벗어난 요조의 행동과 사고는 가족들의 끊임없는 비난과 꾸중을 유발했다.

그 비난과 꾸중은 평균적인 일본인을 훈육하고 양성하는 역할을 하는-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강제성과 폭력성을 지닌-만고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가르침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말대꾸도, 변명도, 말싸움도, 항변도 용납하지 않는다. 무조건 배우고 익히고 복종해야 한다.

요조는 점점 더 그 진리를 행할 능력도 없고 또한 그 진리에 항변할 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고대로부터 단일 계통을 이어온 일본인의 진리, 즉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진리 마냥 그것은 지구상에서 일본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변하지 않을 확고부동한 진리였다.

어린 요조의 고통스런 경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와 사회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표준 인간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부터 훈육·양성되고 있다는 고발이다.

“또 저는 가족한테 꾸중을 듣고 말대꾸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사소한 꾸중은 저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아 저를 미칠 지경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말대꾸는커녕 그 꾸중이야말로 말하자면 만세일계(萬世一系), 즉 고대로부터 단일 계통을 이어온 일본인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나한테는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까 더 이상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라고 확신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싸움도 자기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이 저에게 욕을 하면 그래 정말이야, 내가 엄청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게 생각되어서 언제나 그 공격을 잠자코 받아들이고 속으로는 미칠 듯한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18)

그런 까닭에 요조는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우울함과 긴장감을 꼭꼭 숨긴 채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행세하면서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가족 구성원은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표준 인간’의 진리만을 강요받고 자라는 인간이 어떻게 ‘자유’라는 인간 자신의 본성과 활력을 지켜나갈 수 있겠는가. ‘자유’라는 인간의 본성과 활력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그것이 거부당하고 부정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진짜 모습과 목소리를 숨긴 채 어둡고 음울한 내면세계로 침잠하게 마련이다.

『인간실격』에 등장하는 첫 번째 사진 속 얼굴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던 요조의 자화상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가족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고, 그저 두렵고 거북해서 그 어색함을 못 이긴 나머지 일찍부터 숙달된 익살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즉 저는 어느 틈에 단 한마디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따위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 혼자 언제나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제 어린 소견의 서글픈 익살의 일종이었던 것입니다.”(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p1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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