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힘”…욕망은 삶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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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힘”…욕망은 삶을 변화시킨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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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⑦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욕망한다’는 말의 의미Ⅰ
1951년 개봉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 블랑시 역의 비비안 리(왼쪽)와 스탠리 역의 말론 브란도.
1951년 개봉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 블랑시 역의 비비안 리(왼쪽)와 스탠리 역의 말론 브란도.

[한정주=고전연구가] “블랑시 : (약간 신경질적으로)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김소임 옮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2007, p12.)

욕망의 환상을 좇아 동생 부부(스텔라와 스탠리)가 사는 뉴올리온스의 빈민가 ‘극락’으로 찾아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헤로인 블랑시. 그녀의 삶과 파멸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야누스와 같은 욕망의 이중성, 즉 욕망의 희극성과 비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욕망의 희극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의 변화 가능성이다. 욕망하지 않으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멈춰버린 삶이다. 그런 점에서 ‘욕망한다’는 말은 곧 과거 혹은 현재의 삶에 머물지 않고 삶의 변화를 욕망한다는 의미이다.

동생 스텔라를 찾아 ‘극락’에 오기 전 블랑시의 삶은 파멸 일보 직전 상태였다. 블랑시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처음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남편 앨런이 동성애 문제로 자살한 이후 수많은 낯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심지어 자신이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고등학교 학생까지 유혹해 고향 로렐에서 추방당한 신세였다.

블랑시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만이 내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타자에게 진심으로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할수록 그것의 결핍과 부재는 인간의 정신과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블랑시는 사랑의 욕망에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다. 그녀의 타락은 진심으로 사랑한 남편 앨런에 대한 욕망의 결핍과 부재 때문이다. 블랑시에게 그것의 결핍과 부재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것은 누구든 낯선 이의 친절과 보호에 의지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공포였다. 그런 의미에서 블랑시에게 타락, 즉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욕망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 욕망이 결국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진이 다 빠져 버린” 블랑시는 다른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동생 스텔라가 사는 ‘극락’으로 온 것이다.

“그래요, 나는 낯선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가졌어요. 앨런이 죽고 난 뒤….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만이 내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어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보호받으려 했던 것은 공포, 공포 때문이었죠. 여기저기, 생각해서도 안 될 곳까지, 마침내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에게까지도, 하지만 누군가가 교장에게 편지를 썼죠…. ‘저 여자는 도덕적으로 교사직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맞느냐고요? 그래요, 내 생각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어쨌거나…. 그래서 여기에 온 거예요. 다른 곳이 없더라고요. 난 진이 다 빠져 버렸어요. 진이 다 빠졌다는 말 알아요?”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김소임 옮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2007, p133〜134.)

블랑시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찾아온 ‘극락’은 역설적이게도 ‘극락’이 아니다. 블랑시에게 그곳은 “최악의 악몽 속에서도 결코 그려본 적이 없는” 초라하고 궁색한 삶과 “짐승같이 먹고, 짐승처럼 움직이고, 짐승처럼 말하는” 천박하고 동물적인 욕망만이 난무하는 지옥 같은 곳이다.

하지만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의 친구 미치를 만나면서 지옥 같은 그곳은 블랑시에게-마치 하느님의 기적이 찾아온 것처럼-정말 ‘극락’ 같은 곳으로 변한다. 블랑시에게 미치는 “바위 덩어리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숨을 수 있는 틈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블랑시는 미치를 만난 뒤부터 비로소 과거 혹은 현재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블랑시가 자살한 남편 앨런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을 고백하던 날 미치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으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자고 약속한다.

“미치 : (블랑시를 천천히 자기 품에 안으면서) 당신은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리고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죠. 그게 당신과 나일 수 있을까요, 블랑시?

(블랑시가 잠시 미치를 멍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울며 그의 품에서 몸을 움츠린다. 흐느끼면서 말하려고 애를 쓰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치는 블랑시의 앞이마와 눈에 입을 맞추고 마침내 입술에다 키스한다. 폴카 음악이 사라져 간다. 블랑시는 숨을 들이켰다가 긴 감사의 흐느낌과 함께 숨을 내쉰다.)

블랑시 : 때론… 하느님이… 너무 빨리 나타나는군요!”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김소임 옮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2007, p104.)

욕망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의미를 누구보다 역설했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욕망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힘”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에게 “우리의 욕망은 새로운 타자와 마주쳐서 그것과 연결하려는 긍정적인 힘, 다시 말해 새로운 연결 관계를 만들려는 생산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신주 지음, 『철학 vs 철학』, 오월의 봄, 2010, p576)

새로운 연결과 관계를 만들려는 욕망의 힘이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미치를 향한 블랑시의 마음, 즉 미치와의 관계(결혼)를 통해 삶의 변화를 갈망하는 블랑시의 욕망이 바로 그렇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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