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혁명가 허균이 끝내 신원되지 못한 이유는?…『조선의 천재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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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혁명가 허균이 끝내 신원되지 못한 이유는?…『조선의 천재 허균』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10.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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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산 허균의 영정.

허균은 그의 개혁사상이 그대로 표출된 ‘호민론’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의 세 부류로 나누었다.

대개 얻거나 이룬 것만 즐거워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구속당하고 순순히 법을 떠받들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키는 일이나 하는 백성을 ‘항상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민(恒民)이라고 했다.

가혹하게 빼앗겨 살갗이 벗겨지고 골수가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나오는 곡식이 바닥을 드러내도 도대체 끝이 나지 않는 요구에 따라 갖다 바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백성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원민(怨民)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의 종적을 푸줏간 속에 감추고 암암리에 다른 마음을 쌓고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다행히 시대적인 변고를 만나면 자신의 소원을 실현하려고 행동하는 백성을 ‘자신의 힘으로 세력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해서 ‘호민(豪民)’이라고 했다.

호민을 시대적 변고를 만나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허균은 호민론의 첫 구절에서부터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유학의 민본(民本) 사상보다 진일보한 민권(民權)에 가까운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본은 백성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두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의 사상인데, 허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간 『조선의 천재 허균』(상상출판)은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불온한 사상을 가진 허균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한다.

허균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숱한 역모사건 희생자들 가운데 정여립과 함께 끝내 신원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로 당시 선비들의 위선을 꼬집고 불의를 보거나 뒤틀린 것 그리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하며 온전히 자산의 삶을 살았던 허균이었지만 내적수양과 성찰이 부족했고 당시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연산군의 포악한 학정에 반해 일어났던 중종반정이나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주역들은 거의 고급관리였지만 허균의 역모사건에 연루돼 희생된 대다수 사람들은 소외계층으로 다른 반정들이 당파싸움으로 인한 정쟁이었던데 반해 체제를 전복하려 한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허균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혐의를 시인하려 하지 않았다. 이씨 조선을 무너뜨리고 허씨 조선을 세우려 했는지, 아니면 의창군을 앞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혁성혁명을 준비했는지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저자는 “그의 개혁사상이나 미완의 혁명이 당시의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며 대안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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