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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정동·북촌·서촌·동촌 골목에서 만난 우리 역사…『골목길 역사산책』
심양우 기자  |  syw@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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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3  09: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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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세상을 뜨자 도성 안 황화방 북쪽 언덕에 장사 지내고 능호를 정릉이라 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동네를 정릉동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성계가 죽은 이듬해 태종은 정릉을 사대문 밖 양주군 남사아리 땅 기슭으로 천장해 버린다. 지금의 서울 성북구 정릉동이다. 사대문 안에 있던 정릉이 성북구로 옮겼으니 동네 이름에서도 ‘능’자가 빠지게 된다.

일제의 침탈에 고종은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공사관에 몸을 숨긴다. 이듬해 경운궁으로 환궁해 황제에 등극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온 백성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항거한 3·1운동을 뒤로 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향한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정부 임시청사 경교장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서울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정동은 조선 건국부터 개항, 임시정부 환국, 한국전쟁까지 대한민국 심장부의 아픔이 얼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최석호 서울신학대 교수는 사대문 안 정중앙에 세워진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출발해 격동의 시대를 보낸 정동의 역사를 찾아나선다.

비단 정동만이 아니다. 최 교수는 부암동, 북촌, 서촌, 동촌까지 다섯 곳에서 파란망장했던 근대 역사를 산책한다. 급변하는 현대에 점점 희박해지는 역사인식을 일깨워 자긍심과 정체성을 되찾아 진정한 ‘나’와 만나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최 교수의 여정은 최근 출간된 『골목길 역사산책』(시루)에 고스란히 담겼다.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을 겪으면서도 낙원을 꿈꾸었던 조선 선비들이 발견한 부암동 무릉도원길과 조선의 재건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개화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 북촌, 시를 읊고 진경산수화를 그리던 선비와 화가를 보는 듯한 서촌에 이어 빼앗긴 나라에서 우리 집을 짓고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며 훗날을 기약했던 선각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수연산방까지의 동촌 등이 ‘역사산책’의 장소들이다.

저자는 이들 지역을 세 방향으로 접근한다. 우선 각 지역이 갖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어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을 소개한다. 그리고 가장 핵심이 되는 골목길을 직접 걸으며 한 곳 한 곳 그곳에 어린 숨결과 발자취를 좇는다.

최 교수는 스스로를 ‘역사산책자’라 지칭한다. 독자들이 골목골목을 걸으며 그 역사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나’와 연결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자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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