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의 촉매로서의 예술생산…저항하는 예술과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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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혁의 촉매로서의 예술생산…저항하는 예술과 예술가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1.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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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쥐 이야기’, 1951년, 콜라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유럽의 아나키즘이 시작된 19세기 예술은 아나키즘 운동의 핵심부를 차지하며 20세기초까지 이어져왔다.

“참딘 인식으로 사회의 부당함을 진지하고 대담하게 묘사하는 창작방식은 가두 연단의 선동가가 보여주는 가장 격렬한 장광설보다 더 큰 위험이자…보다 강력한 영감이 된다”는 태도는 오늘날까지 아나키즘 이론가와 행동주의자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은 종교가 우리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자본주의경제가 우리의 육체적 행복을 위태롭게 만든다며 비판하고 또 우리의 자유를 막는 정부 행태를 비판한다.

그녀는 또한 아나키즘의 목적이 이러한 압제들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행동주의 예술비평가 앨런 앤틀리프의 『아나키와 예술』(이학사)은 1860년대부터 20세기 후반 사이의 예술가 및 창조적 지식인이 아나키즘 이론과 정치사상에 대해 보여주었던 예술에서의 아나키즘이라는 분야를 집중 조명한다.

저자는 사회 해방의 촉매로서의 아나키즘과 예술 생산이 연결되는 접점을 살펴보기 위한 방법으로 사건 중심의 접근 방식을 택한다.

파리코뮌에서부터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쳐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미학, 전쟁과 폭력, 성적 해방, 생태학적 위기, 군국주의, 국가 권위주의, 페미니즘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에 아나키즘 예술가들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60여개에 이르는 자료 도판과 함께 탐구한다.

앤틀리프가 보여주는 19세기 이래의 주요한 반역적인 예술 실천의 사회적 역사는 미학 대 정치학의 이분법이란 거짓이며 그 사이에 다양한 갈등과 긴장의 숨결이 존재함을 드러내준다.

 

아나키즘은 하나의 긴장이라는 숀 쉬한(Sean Sheehan)의 규정은 아나키즘 예술의 지난한 역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나키즘은 사물이 지금 있는 방식과 있을 수 있는 방식 사이에, 존재와 되어감 사이에, 절망과 희망 사이에, 고독과 연대 사이에, 공산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 맑스와 니체 사이에, 권력과 합리주의의 한계 사이에, 폭력을 거부하는 것과 평화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새로운 아나키즘은 이런 긴장들을 강력한 동력으로 수용하며, 아나키스트들은 그런 긴장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다양한 아나키즘적 예술 실천이 사회정치적 상황 및 아나키즘의 사상적 토대와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 짜이는 지점을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역사적 탄압과 좌절에도 오늘날 아나키즘 예술이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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