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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거짓 눈꺼풀”[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④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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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1  0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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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④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제가도 비슷한 맥락에서 떼어 내려고 해도 떼어 낼 수 없고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거짓 눈꺼풀”을 덧붙이고 있는 것처럼 당시 식자(識者)들이 ‘호(胡)’, 즉 오랑캐라는 한 글자를 거짓 눈꺼풀 마냥 덧붙인 채 천하의 이치를 말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학문에는 학문의 꺼풀이 있게 되었고, 문장에는 문장의 꺼풀이 있게 되었다”고 질타했다.

쉽게 말해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거짓 눈꺼풀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에 청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오랑캐의 것으로 멸시하고 배척하느라 정작 자신들이 ‘보는 것’과 ‘아는 것’이 거짓되고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어리석음을 한탄한 것이다.

그래서 어진 자의 눈과 마음으로 본다면 ‘인(仁)’이 되고, 지혜로운 자의 눈과 마음으로 본다면 ‘지(智)’가 되는 이치로 잘못된 견문으로 보게 되면 ‘우맹(愚氓)’이나 다름없고 왜곡된 지식으로 보게 되면 ‘무지(無知)’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 눈꺼풀을 떼어내야 제대로 볼 수 있듯이 학문의 꺼풀과 문장의 꺼풀을 벗겨내야 비로소 올바로 ‘보게 되는 것’이고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속된 눈꺼풀을 덧붙이고 있어 떼어 내려 해도 떼어 낼 수가 없다. 학문에는 학문의 꺼풀이 있고, 문장에는 문장의 꺼풀이 있다.

큰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예를 들어 수레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는 산천이 험하고 가로막혀 수레를 쓸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산해관(山海館)의 편액을 두고도 진나라 때 이사(李斯)의 글쓰기라고 하면서 십 리 밖에서도 능히 보인다고 우긴다.

서양 사람은 인물화를 그릴 때 눈동자의 검은 부분을 즙을 내서 눈동자의 점을 찍는지라 언뜻 보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오랑캐가 머리를 땋는 것은 부모가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에 따라 하나로도 하고 둘로도 하니, 이것은 마치 옛날의 머리 땋는 제도와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황제가 성씨를 낙점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서책을 찍을 때 토판(土版)으로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일일이 다 꼽을 수가 없다. 비록 나와 친하게 지내 나를 믿는 사람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저쪽 말을 믿는다. 스스로 나를 안다고 여기던 사람이 늘상 나를 밀어 높이다가도 바람결에 한마디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을 듣게 되며, 마침내 그 평생의 벗을 크게 의심하고 갑자기 나를 비방하는 자의 말을 믿는다.

나는 그가 왜 나를 믿지 않고 저를 믿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사람은 바로 ‘호(胡)’, 즉 오랑캐라는 한 글자로 천하를 말살하려 들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의 풍속이 이처럼 훌륭하다’고 말하면 그가 바라던 바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증명할까? 시험 삼아 사람들에게 ‘중국의 학자 중에도 퇴계 같은 사람이 있고, 문장도 간이(簡易) 최립 같은 사람이 있다. 명필은 한석봉보다 더 낫다’고 말하면 반드시 발끈하여 낯빛이 변하면서 대뜸 ‘어찌 그럴 리가 있겠소?’라고 말한다. 심한 경우는 그 사람을 죄주려 들기까지 한다.

시험 삼아 사람들에게 ‘만주 사람은 그 말소리란 것이 꼭 개 짖는 소리 같고 음식도 냄새가 나서 도무지 가까이할 수가 없다. 뱀을 시루에 쪄서 먹고 황제의 누이가 역졸과 붙어먹어 종종 가남풍(賈南風)의 일이 일어나곤 한다’고 하면 반드시 크게 기뻐하면서 여기저기 말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힘껏 변론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왔지만 이런 일은 전혀 없었네.’ 그러자 그 사람은 마침내 석연찮아 하면서 말했다. ‘아무개 역관이 이렇게 말했단 말일세.’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대가 그 역관과의 친분 정도가 나와 비교할 때 어떠한가?’ 그는 말했다. ‘사귐이야 깊지 않지만 거짓말할 사람은 아닐세.’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게 거짓말을 한 게로군.’

그래서 어진 자가 보면 인(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보면 지(智)라고 한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내가 자주 사람들과 논변하자 자못 이를 비방하는 자마저 생겨났다. 인하여 이 일을 써서 스스로 경계를 삼는다.” 박제가, 『정유각집』, ‘만필(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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