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음행 소문…조식과 이황의 전혀 다른 성(性)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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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음행 소문…조식과 이황의 전혀 다른 성(性) 인식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7.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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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절로 들춰본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
▲ 신윤복의 풍속화 ‘월하정인(月下情人)’

우리 역사에서 조선시대만큼 여성을 억압했던 적은 없었다. 이전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자유로웠던 이혼과 재혼의 자유마저 조선시대에서는 불가능했다.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일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와 삼종지도는 대표적이다.

역사상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회는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일정한 의미체계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조직되고 사회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유교 사회였던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여성의 성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사회통합의 원리로 수렴되고 나아가 제도와 이념으로 구현되었다.

그 중심에는 정절(貞節)이라는 족쇄가 있다. 이는 조선 500년의 역사를 통해 꾸준히 전개되었던 절부 발굴과 열녀포상의 정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정절녀와 모종의 거래를 하는 동안 지식인들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해 재구성했고, 그것으로 조선 여성의 삶을 심판하는 자료로 삼았다.

정절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忠)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孝)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의 의무였다. 또한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三綱)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정절이 곧 국법이었기 때문이다.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순결과 신의로서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정절의 역사』(푸른역사)는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이다.

저자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500년 동안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과 관습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정절이라는 키워드를 만났다.

그리고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됐음을 알았다.

정절의 키워드로 읽는 조선시대는 역사의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저자는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크고 작은 다양한 차이들에 주목했다. 정절 개념이 조선의 역사적 조건들과 만나는 지점은 다양했고, 그 전개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행해졌다.

이에 대한 남성 지식인들의 인식과 실천 또한 일률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16세기 당대의 절의지사(節義之士)로 이름난 남명 조식은 사족 여성의 규방 생활을 놓고 왈가왈부하다 퇴계로부터 ‘그 높은 절개를 스스로 깎아 내리며 시비를 다투기를 거칠 줄 모르는 자, 이해할 수 없는 조군(曺君)’으로 평가됐다.

퇴계의 학단에서는 과부의 ‘음행’ 소문을 퍼뜨린 남명을 ‘선비의 처신’을 들어 비난했다. 당시 학계와 정계를 강타한 남명의 소문 사건, 그 퇴계학단의 뒷 담화가 1600년(선조 33년) 『퇴계집』의 간행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남명 문인들은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처럼 ‘음행’ 소문을 대하는 미암 유희춘과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태도가 달랐고,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환향녀’를 맞이하는 최명길과 장유의 태도가 달랐다.

권력을 가진 사족 남성 대부분은 여성의 정절을 열렬히 주장하지만 이 ‘열녀열(烈女熱)’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류의 폐단’으로 치부하는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 지식인들은 성을 본래적인 것이라는 주장하지만 최한기는 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보았다.

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여성 정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은 당연한 이치다. 특히 구체적인 사건과 주제 논쟁으로 조명한 정절의 담론은 여성과 남성, 그 관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사건과 논쟁은 근엄한 상투와 도포자락에 감추어진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와 이기심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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