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요, 최고로 중요한 일은 자식 가르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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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요, 최고로 중요한 일은 자식 가르치는 것”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9.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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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④

[명심보감 인문학] 제10강 훈자편(訓子篇)…자식을 가르쳐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至樂(지락)은 莫如讀書(막여독서)요 至要(지요)는 莫如敎子(막여교자)니라.

(최고로 즐거운 일은 독서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최고로 중요한 일은 가르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로 중요한 일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가르쳐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그것은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절차(切磋)’는 뼈나 상아를 칼로 자르고 줄로 다듬는 것이고, ‘탁마(琢磨)’는 옥이나 돌을 망치로 쪼아내고 숫돌에 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식을 가르칠 때는 아무 쓸모없거나 별반 가치가 없는 뼈나 상아 또는 옥이나 돌을 자르고 다듬고 쪼아내고 갈아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만드는 세공사(細工師)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세공사들이 뼈나 상아, 옥이나 돌을 다룰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만들 수 있는지를. 성심(誠心)을 다하고 공경(恭敬)을 다하고 정성(精誠)을 다해 세공해야 비로소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자식을 가르칠 때는 이렇듯 성심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

특별히 『대학』에서는 ‘절차탁마’의 유래가 되는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 기수의 물굽이)’의 “如切如磋(여절여차) 如琢如磨(여탁여마)”, 곧 “자른 듯 다듬는 듯, 쪼아내듯 가는 듯”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구절에 대해 “如切如磋者(여절여차자) 道學也(도학야) 如琢如磨者(여탁여마자) 自修也(자수야)”, 즉 “자른 듯 다듬는 듯 한다는 것은 배움을 말하는 것이고, 쪼아내듯 가는 듯 한다는 것은 자신을 갈고 닦는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스스로 배우고 자신을 갈고 닦을 때 절차탁마하듯이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식을 가르칠 때도 절차탁마하듯이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까닭에 북송 시대 유영(柳永)이라는 문장가는 『고문진보』에 실린 ‘권학문’에서 “부모가 된 사람은 반드시 자식을 가르쳐야 하고, 자식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엄숙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만큼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부모 된 사람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과제였던 것이다.

父母養其子而不敎(부모양기자이불교)
是不愛其子也(시불애기자야)
雖敎而不嚴(수교이불엄)
是亦不愛其子也(시역불애기자야)
‧… (중 략) …
是故養子必敎(시고양자필교)
敎則必嚴(교즉필엄)
嚴則必勤(엄즉필근)
勤則必成(근즉필성)
… (후 략) …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네.
비록 가르친다고 해도 엄숙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네.
… (중 략) …
이 때문에 자식을 기르면 반드시 가르쳐야 하고
가르칠 때는 반드시 엄숙해야 하네.
부모가 엄숙하면 반드시 자식은 배움에 부지런할 것이고
부지런하다면 배움은 반드시 이루어지네.
… (후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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