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聾巖) 이현보…“세상사·벼슬살이 멀리하는 귀머거리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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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聾巖) 이현보…“세상사·벼슬살이 멀리하는 귀머거리처럼 살고 싶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2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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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㉗
▲ 농암 이현보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비중(棐仲). 국문가사(國文歌辭)로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사대부 시인으로 국문학사(國文學史)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호 ‘농암(聾巖)’은 직역하면 ‘귀머거리 바위’라는 뜻이다.

그는 나이 46세(1512년) 때 경북 안동의 영지산(靈芝山) 기슭 ‘농암(聾巖)’이라는 바위 곁에 집을 짓고 다시 그 뜻을 취해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호에 담은 철학은 직접 쓴 ‘애일당중신기(愛日堂重新記)’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시골집이 좁고 누추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恨)이 되었다. 이에 마침내 바위 옆에 집을 지었다. 바위는 옛적부터 이름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색암(耳塞巖)’이라 전해져 왔다.

바위 앞에 큰 개울이 있고 위쪽으로는 급하게 흐르는 여울이 있어서, 여울 물 소리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의 귀를 막아 잘 듣지 못하게 된다. ‘이색(耳塞)’이라는 이름은 반드시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은둔하여 벼슬살이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이 거처하기에 마땅한 곳이다. 이로 말미암아 바위를 ‘농암(聾巖)’이라 이르고 또한 늙은이의 자호(自號)로 삼았다.”

자연을 벗 삼아 은둔해 살면서 세상사와 벼슬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호가 바로 ‘농암(聾巖)’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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