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明齋) 윤증…“선비의 길과 학문의 도리는 오직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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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明齋) 윤증…“선비의 길과 학문의 도리는 오직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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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64)
▲ 명재 윤증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자인(子仁). 전통적으로 서인의 명문가 중 하나인 파평 윤씨 출신으로 신독재 김집과 우암 송시열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라서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회니시비(懷尼是非)’ 이후 소론의 영수가 되어 송시열과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을 빚었다. 더욱이 송시열과 절교한 이후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큰 곤욕을 겪었다.

주자학 일색(一色)의 사상과 노론의 일당(一黨) 독재에 비판적이었던 그의 견해는 18세기에 등장하는 소론 출신의 진보적인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군자(선비)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학문적 경지를 집약하고 있는 유학의 경전은 『대학(大學)』이다. 여기에서는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를 이른바 ‘3강령(三綱領)’과 ‘8조목(八條目)’으로 정리해놓았다.

이들 중 가장 앞서 나오는 것이 다름 아닌 ‘명명덕(明明德)’, 즉 ‘명덕(明德)을 밝히는 일’이다. 명덕(明德)이란 ‘공명정대한 덕행’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람이 본래부터 타고나는 착한 본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윤증의 호 ‘명재(明齋)’는 이 ‘명명덕(明明德)’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윤증은 일찍부터 주자학 이외의 모든 사상과 학문을 이단(異端)으로 모는 송시열 등 노론 계열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보수성과 폐쇄성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스승을 배반한 패륜아라는 공격까지 받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윤증은 죽을 때까지 선비의 길과 학문의 도리를 오직 ‘명덕(明德)을 밝히는(明) 것’에서 찾았을 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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