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실(燃藜室) 이긍익…“명아주 지팡이 태워 불 밝히고 역사 저술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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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실(燃藜室) 이긍익…“명아주 지팡이 태워 불 밝히고 역사 저술하는 방”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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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76)
▲ 조선의 야사(野史)를 종합해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연려실기술』.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장경(長卿). 원교 이광사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당쟁으로 희생당해 절도(絶島)에서 죽음을 맞은 잔혹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뜻을 버리고 야인으로 지내며 책을 읽고 저술하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평생의 연구와 저술을 집대성하여 조선의 야사(野史)를 종합해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을 완성했다.

이 역사서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 서술 방법은 물론 특정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그 발생 원인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결과 및 영향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라는 체제를 새롭게 선보였다.

그의 호 ‘연려실(燃藜室)’은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들의 서실 벽에 아버지 이광사가 써준 것인데, 그 유래 역시 『전국책(戰國策)』을 저술한 한(漢)나라의 역사가 유향(劉向)의 고사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긍익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연려실기술』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의례(義例)에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일찍이 유향(劉向)이 책을 교정할 때 태을선인(太乙仙人)이 청려장(靑藜杖)을 태워 불을 밝게 해 주었다는 고사(故事)를 흠모하였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손수 쓰신 ‘연려실(燃藜室)’이라는 세 글자를 받아 서실(書室)의 벽 위에 붙여두고 각판(刻板)하려고 하였으나 미처 하지 못했다.

친지(親知)들 사이에 전하기를 ‘그 글씨가 선인(先人: 이광사)이 남긴 글씨 중에서 최고로 잘된 것이라고 하여 서로 다투어 모사(模寫)하고 각판을 한 사람이 많았다. 이로 말미암아 간혹 자신의 호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라고 하니 역시 웃을 만한 일이다. 이 책이 이루어지자 마침내『연려실기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서 ‘연려(燃藜)’는 ‘청려장(靑藜杖: 명아주 지팡이)을 태운다’는 뜻이기 때문에 ‘연려실(燃藜室)’이란 ‘명아주 지팡이를 태워 불을 밝게 하고 역사를 저술하는 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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