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는 즐거움…“내가 나를 벗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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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는 즐거움…“내가 나를 벗 삼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6.17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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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116)

[한정주=역사평론가] 눈 오는 새벽이나 비오는 밤에 좋은 벗이 오지 않는다.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할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니 듣는 이 나의 귀일 뿐이다. 내 팔로 글씨를 쓰니 구경하는 이 나의 눈일 뿐이다.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구나. 다시 무슨 원망이 있겠는가?(재번역)

雪之晨 雨之夕 佳朋不來 誰與晤言 試以我口讀之 而聽之者我耳也 我腕書之 而玩之者我眼也 以吾友我 復何怨乎. 『선귤당농소』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책과 더불어 어울리면 된다. 책이 없을 경우에는 구름과 안개가 나의 벗이 되고, 구름과 안개조차 없다면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나는 비둘기에게 내 마음을 의탁한다.

하늘을 나는 비둘기가 없으면 남쪽 동네의 회화나무와 벗 삼고, 원추리 잎사귀 사이의 귀뚜라미를 감상하며 즐긴다.

대개 내가 사랑해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면 모두 나의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不須歎無友 書帙堪輿遊 無書帙 雲霞吾友也 無雲霞 空外飛鷗 可托吾心 無飛鷗 南里槐樹 可望而親也 萱葉間促織 可玩而悅也 凡吾所愛之而渠不猜疑者 皆吾佳朋也. 『선귤당농소』

허균은 자신의 집에 ‘사우재(四友齋)’라고 이름 지었다. 도연명과 이태백과 소동파에다가 자신까지 더해 네 사람을 벗 삼아 산다는 뜻이다.

이른바 사대부와 유생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허균을 가리켜 ‘하늘이 보낸 괴물’이라 비방하고 ‘더럽다’고 조롱하며 교제와 왕래를 끊어 버렸다.

허균은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세와 명리에 뜻을 두지 않았던 옛 사람 셋과 나 자신을 벗 삼아 살 뿐이라면서 보란 듯이 집에다가 ‘사우재’라고 써서 붙였다.

또한 윤휴는 대나무와 국화와 진송(秦松)과 노송(魯松)과 동백과 창송(蒼松)을 ‘육우(六友)’ 라고 했고, 권근은 삽과 칼과 낫을 벗 삼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삼우설(三友說)’에 담았고, 이색은 눈과 달과 바람과 꽃과 강과 산을 ‘육우(六友)’라고 불렀다.

더욱이 유방선은 돋보기와 뿔잔과 쇠칼을 벗 삼아 살며 ‘서파삼우(西坡三友)’라고 자호(自號)한 이의 삶을 글로 옮겨 적기도 했다.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자칫 뜻을 잃기 쉽다. 세상의 찬사와 비난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면 마음만 혼란해진다. 오히려 서책 속 옛 사람과 자연 만물을 벗 삼아 고요하게 사는 것이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을 늘려 보라.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곧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홀로 노는 즐거움이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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