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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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8.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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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⑨
▲ 신윤복의 미인도.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⑨

[한정주=역사평론가] 이용휴의 ‘핵심과 본령을 보았다면 일부나 절반만 봤다고 해도 전체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글은 세상 만물을 대할 때는 자신이 본 것 너머까지 볼 수 있는, 즉 부분만을 보고도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관찰력과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간직하고 있는 소품문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서 너무나도 고운 미인을 보았다. 그런데 얼굴을 반쪽만 드러내고 있어 전체를 보지 못해 상념이 맺혀 병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고 깨우쳐 주자 그 사람은 곧바로 상념이 풀렸다고 한다. 산수를 보는 것도 모두 이와 같다. 또 금강산은 산으로는 비로봉(毘盧峰)이 으뜸이고 물로는 만폭동(萬瀑洞)이 최고다. 이제 비로봉과 만폭동을 다 보았으니 절반만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하자면 순임금의 음악을 듣는데서 그치고 다른 음악은 듣지 않는 것과 같다.” 이용휴, 『혜환잡저 6』 ‘반풍록에 붙여(題半楓錄)’

모든 사람을 다 사귈 수 없고,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므로 많은 무리 가운데 뽑아서 그 요체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비록 네 개의 고을을 구경하더라도 인간세계와 산수자연의 관람을 남김없이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강정진사군기유록서(姜廷進四郡記遊錄序)’ 또한 앞서 읽은 글과 동일한 맥락을 취하고 있는 흥미로운 글이다.

“모든 사람을 다 사귈 수는 없으므로 사우(四友: 가장 가까운 네 명의 벗)를 정한다.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므로 사서(四書)를 먼저 읽는다. 많은 무리 가운데 뽑아서 그 요체를 얻는 것이다.

나의 벗 강정진(姜廷進)은 우러러보아서는 두 수레바퀴 같은 해와 달의 빠름에 놀라고, 굽어보아서는 아홉 폭 지도 가득한 세계의 넓음에 찬탄하여 마음속으로 혼자 이렇게 말했다.

‘장부로 태어나서 어찌 과일씨 만한 곳에 안주하면서 틈새로 빠져나가는 망아지 같은 세월을 앉은 채 보낼 수 있겠는가? 내 다리 힘은 높은 곳에 오를 만하고, 자력으로 멀리까지 이를 수 있으며, 사내종은 식량을 지고 옮길 수 있다. 물에서는 배를 살 수 있고, 산에서는 가마꾼을 쓸 수 있다. 누가 나의 여행을 막을 것인가? 내 길을 나서서 원유편(遠遊篇)을 지으리라.’

그런데 다시 이렇게 혼자 생각했다. ‘나는 승려나 도사가 아니고 인간 세상의 윤리를 떠나지 않는 선비이다. 그런데 어찌 성묘도 제때 하지 못하면서 여행길에서 늙을 수 있겠는가?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또한 고을이 360여 개나 되니 다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그 중에서 가장 경치 좋은 네 고을을 선택하여 유람하기로 했다. 또 단양 적성(赤城)에 들어온 이후에는 시내 하나, 골짜기 하나를 지날 때마다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곤 하니 비록 다니는 고을은 넷뿐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세계와 산수 자연의 관람을 남김없이 다하는 셈이다.’” 이용휴, ‘강정진사군기유록서(姜廷進四郡記遊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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