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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방에 있어도 네거리에 있듯이…”[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①
한정주 기자  |  jjoo@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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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9  11: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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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7강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라①

[한정주=역사평론가] 景行錄云(경행록운) 坐密室(좌밀실)을 如通衢(여통구)하고 馭寸心(어촌심)을 如六馬(여육마)하면 可免過(가면과)니라.

(『경행록』에서 말하였다. “비밀스러운 방에 앉아 있어도 마치 사방이 탁 트인 네거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하고, 마음속에 품은 작은 뜻을 다스리기를 마치 여섯 마리의 말을 부리는 것처럼 한다면 허물을 피할 수 있다.”)

비밀스러운 방에 앉아 있어도 마치 사방이 탁 트인 네거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과 『중용』의 가르침을 빌어서 말하자면 ‘무자기(毋自欺)와 신독(愼獨)’, 즉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품은 작은 뜻일지라도 마치 여섯 마리의 말을 부리듯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장』의 가르침을 빌어서 말하자면 ‘존심(存心)과 양성(養性)’, 곧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며 살아야 한다.

『대학』의 <성심장(誠心章)>에서는 자신의 뜻을 진실하고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고[毋自欺]” 반드시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愼獨]”고 강조한다.

“이른바 자신의 뜻을 진실하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하며, 악(惡)을 미워하기를 마치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하고, 선(善)을 즐거워하기를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한다. 이것을 스스로 겸양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까닭에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한다.”

또한 『중용』에서는 첫 시작에서부터 ‘신독(愼獨)’의 중요성 및 그 가치와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천명(天命)을 본성이라고 하고, 본성을 따라가는 것을 도리라고 하고, 도리를 갈고 닦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한다. 도리는 잠시라도 나와 떨어질 수 없다. 만약 나와 도리가 떨어진다면 더 이상 도리가 아니다. 이러한 까닭에 군자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경계하고 삼가고 조심하며, 듣지 않을 때 몹시 두려워한다. 은밀(隱密)한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 은미(隱微)한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본래 『대학』과 『중용』은 독립된 서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예기』에 제31편과 제42편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훗날 남송 성리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주자(주희)가 따로 뽑아내어 『논어』·『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분류해 경전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주자는 오경(五經:『시경』·『서경』·『주역』·『춘추』·『예기』) 중심의 유학 공부를 사서(四書) 중심의 유학 공부로 바꾸어버렸다.

대개 성리학을 이전의 유학과 대비해 신유학(新儒學)이라고 부르는데 오경이 성리학 이전 유학의 바이블이었다면 사서는 성리학 이후 유학의 바이블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리학에서도 여전히 오경을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사서를 오경보다 더 중요시하게 취급한 것이다.

『대학』의 저자가 증자이고, 『중용』의 저자가 자사라는 주장 역시 -숱한 논란에도- 주자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문학자들은 『대학』과 『중용』이 증자와 자사의 저작이라는 주장은 그 근거가 취약하다면서 ‘작자 미상’으로 보고 있다.

‘무자기와 신독’이 앞서 필자가 성리학의 바이블이라고 한 사서 중 『대학』과 『중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존심과 양성’은 사서 중 『맹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맹자』 <진심 상>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되고,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여[存其心]’ ‘자신의 본성을 기르는 것[養其性]’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여 자신의 본성을 기른다는 맹자의 말에서 사람이 마땅히 보존해야 할 마음과 길러야 할 본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한 맹자의 답이 다시 『맹자』 <고자 상(告子 上)>편에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맹자가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 착한 본성, 곧 ‘성선(性善)’이다.

그런데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착한 본성은 외부적인 것의 영향과 자극에 의해 욕심이나 욕망 등을 일으켜서 사람에게 나쁜 생각과 나쁜 말과 나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옮겨놓은 여기 『경행록』의 격언에서는 아무리 작은 뜻이라고 하더라도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다루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조심하고 신중하게 다스려야 비로소 욕심과 욕망에 이끌려 잘못을 저지르고 허물을 쌓는 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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