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때 함께 한 천 명 친구 어려울 때 단 한 명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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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때 함께 한 천 명 친구 어려울 때 단 한 명도 없구나”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11.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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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9강 교우편(交友篇)…친구를 잘 사귀어라⑤

[한정주=역사평론가] 酒食兄弟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하나 急難之朋一個無(급난지붕일개무)니라.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형과 아우라고 하던 사람 천 명이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한 명도 없구나.)

앞선 제9강 ‘근학(勤學)’ 편에서 중국 문학사를 찬란하게 빛내 당송팔대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들 팔대가 중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만 당나라 때 문장가이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송나라 때 문장가라는 것 역시 이야기했다.

또한 이들을 ‘당송팔대가’라고 일컫는 까닭은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 크게 유행한 사륙변려체의 문장을 배격하고 진한(秦漢) 시대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전개했기 때문이라는 점 역시 언급했다.

특히 당송팔대가 중 한유와 유종원은 이후 송나라 때 활동한 여섯 문장가를 이끈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한유와 유종원은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고문운동’을 펼쳤다. 또한 ‘복고(復古), 숭유(崇儒), 척불(斥佛)’의 뜻까지 함께 했다. 그 만큼 한유나 유종원은 문학적·사상적 측면에서 깊은 교제를 맺고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유종원은 한유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지만 순종(順宗)이 즉위한 후 정치 개혁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이곳저곳으로 지방 관직을 전전하다가 서기 819년 47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한유는 그보다 5년 후인 824년에 5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된다.

어쨌든 유종원이 사망할 당시 한유는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던 유종원을 애도하는 글을 남길 수 있었다. 한유가 유종원의 삶과 행적을 기록한 문장이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다. 여기에서 자후는 유종원의 자(字)이다.

한유가 지은 <유자후묘지명>에 바로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친구란 곤궁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사귐의 도리를 알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선비는 곤궁한 상황에 처해서야 비로소 절개와 의리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서로 공경하고 기뻐하며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누고 즐거워하면서 친밀하게 왕래한다. 서로 손을 맞잡고 사양하며 겸손을 떨고 폐와 간까지 상대방에게 보여주면서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눈물을 흘리고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는 다짐을 하며 절대로 서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겨우 머리카락에 비교할 만큼 아주 작은 이해(利害)라도 얽히게 되면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눈을 흘기며 서로를 미워한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내밀어 구해주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밀어 넣고 심지어 돌까지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금수(禽獸)와 오랑캐도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인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좋은 계책을 얻었다고 여겨서 자랑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은 대개 부귀하고 부유할 때는 마음을 다해 친밀하게 사귀다가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아주 사소한 것을 두고도 원수가 되기 십상이고, 심지어 부귀하고 부유할 때는 마치 폐와 간이라도 내줄 것처럼 사귀던 사람도 곤궁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구해주려고 하기는커녕 모른 척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 넣고 파멸시키려 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한유는 덧붙이기를 유종원은 자신과 서로 허물없이 사귀면서 좋을 때에도 진심을 다해 절개와 의리를 지키고 나쁠 때에도 진심을 다해 절개와 의리를 지켰기 때문에 만약 풍문으로라도 유종원의 사귐의 도리를 듣게 되는 사람들은 다소나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유의 <유자후묘지명>에 나오는 “握手出肺肝相示(악수출폐간상시)”, 즉 “손을 맞잡고 폐와 간까지 상대방에게 보여준다”는 구절에서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정도로 친한 사귐’을 비유하는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또한 “士窮乃見節義(사궁내견절의)”, 곧 “선비는 곤궁할 때 비로소 절개와 의리를 볼 수 있다”는 구절을 통해서는 곤란한 처지와 궁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절개와 의리를 잃지 않는 사람과의 사귐이 바로 ‘진정한 사귐’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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